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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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작성일 : 12-10-25 10:24
서원 바로 알기① - 學習과 祭享의 공간 書院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715  


輿論 형성의 場이자 圖書館이었던 書院

◆서원명칭의 유래
 
서원의 명칭은 당(唐)나라 현종(玄宗) 때 궁중에 있던 서적(書籍)의 편수처(編修處)이던 여정전서원(麗正殿書院)·집현전서원(集賢殿書院)에서 유래했다.
이후 송나라 때 지방의 사숙(私塾)에 조정(朝廷)에서 서원이라는 이름을 준 데서 비롯되어 서원이 학교의 명칭이 됐다. 수양·석고(石鼓)·악록(嶽麓)·백록동(白鹿洞) 등의 4대 서원이 생겼으며, 특히 주자(朱子)가 강론(講論)을 하던 백록동서원은 유명하였다.
이후 서원은 선현(先賢)과 향현(鄕賢)을 제향(祭享)하는 사우(祠宇)와 청소년을 교육하는 서재(書齋)를 아울러 갖추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서원의 시작

우리나라에서 사와 재를 겸비한 최초의 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의 백운동 서원 즉 소수서원이다. 소수서원은 542년(중종 37) 경상도 풍기군수(豊基郡守) 주세붕(周世鵬)이 관내 순흥(順興) 백운동(白雲洞)에 고려 유교(儒敎)의 중흥자(中興者) 안향(安珦)의 구가(舊家)가 있음을 알고 거기에 사우(祠宇)를 세워 제사를 지내고 경적(經籍)을 구입하여 유생들을 모아 가르친 것에서 시작됐다. 그 뒤 퇴계(退溪) 이황(李滉)이 풍기군수로 와서 이를 보고 중국 백록동 고사(古事)처럼 조정에서 사액(賜額)과 전토(田土)를 주도록 건의함에 따라 명종은 1550년(명종 5) 이를 권장하는 뜻에서 백운동서원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고 친필로 쓴 액(額)과 서적을 하사하고 학전(學田)·노비(奴婢)를 내렸다. 그리고 이들 토지와 노비에 대한 면세(免稅)·면역(免役)의 특권을 내려 이것이 사액서원(賜額書院)의 시초가 되었다. 소수서원 이전에도 도천서원(道川書院)이 1401년(태종 1) 단성(丹城)에, 김굉필(金宏弼)을 제사하는 천곡서원(川谷書院)이 1528년(중종 23) 성주(星州)에, 김구(金坵)를 제사하는 도동서원(道洞書院)이 1534년(중종 29) 부안(扶安)에 각각 세워졌으나 모두 사(祠)와 재(齋)의 기능을 겸비하지 않은 것이었다.

◆서원의 폭발적 증설

소수서원 이후 서원의 설치는 전국에 미쳐 명종 이전에 설립된 것이 29개, 선조 때는 124개에 이르렀고, 당쟁이 극심했던 숙종 때 설치한 것만 300여 개소에 이르러 1도에 80~90개의 서원이 세워졌으며, 국가 공인(公認)의 절차인 사액(賜額)의 청원에 따라 사액을 내린 서원도 늘어나 숙종 때만 해도 130여 개소에 이르렀다. 서원의 폭발적 증설은 관학(官學)인 향교(鄕校)의 쇠퇴를 가져왔다.

◆서원에 대한 규제

서원이 남설되자 정부차원에서 규제가 시작됐다. 효종·숙종 때는 사액(賜額)에 대한 통제를 가하고 첩설자(疊設者)를 처벌하는 규정까지 두었으며, 영조 때는 안동 김상헌(金尙憲)의 원향(院享)을 철폐한 것을 시발로 대대적인 서원 정비에 들어가 200여개 소를 철폐하기까지 하였다. 그래도 700여개 소나 남아 있었다. 1864년(고종 1)에 집권한 대원군(大院君)은 서원에 대한 일체의 특권을 철폐하여, 서원의 설치를 엄금하고 그 이듬해 5월에는 대표적인 서원인 만동묘와 화양서원을 폐쇄한 이후 적극적으로 서원의 정비를 단행하여, 사표(師表)가 될 만한 47개소의 서원만 남기고 모두 철폐하였다.

◆서원의 교육과정

서원(書院)은 교육(敎育)과 제향(祭享) 기능이 중심이었고, 양반(兩班)들이 모여 여러 문제를 의논하고 여론을 형성하는 공공장소의 기능을 하였다. 교육내용은 성리학적(性理學的)이고 도학적(道學的)인 것이 중심을 이루었다. 대체로 소학(小學)·대학(大學)·논어(論語)·맹자(孟子)· 중용(中庸)·시경(詩經)·서경(書經)·주역(周易)·춘추(春秋)의 차례를 따라 학습이 진행되었다. 교육방법은 원규(院規)에 의한 규제(規制)와 원생(院生) 자신의 자율적인 실천 및 학습의 조화 속에서 이루어졌다.
교수방법으로는 배운 글을 소리 높여 읽고 의리를 문답하는 강(講)이 기본이었으며, 강(講)의 평가는 대통(大通)·통(通)·약통(略通) 조통(粗通)·불통(不通)의 5단계 또는 통(通)·약통(略通)·조통(粗通)·불통(不通)의 4단계로 나누었다. 서원(書院)은 향촌사회(鄕村社會)의 도서관(圖書館) 역할도 하였다. 책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에 서원(書院))은 서적의 수집과 보관 및 보급 기능도 수행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