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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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25 10:28
서원 바로 알기⑧ - 개성의 崇陽, 영천의 臨皐서원과 용인의 忠烈書院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104  


圃隱 鄭夢周 선생을 모시고 있는 서원
- 개성의 崇陽, 영천의 臨皐서원과 용인의 忠烈書院 -

고려 말의 대학자이자 충신인 포은 정몽주 선생을 모시고 있는 서원은 전국에 11개 서원에 달한다. 북한에 있는 숭양서원(崇陽書院)을 비롯해 경상북도 영천에 있는 임고서원(臨皐書院)과 경기도 용인에 있는 충렬서원(忠烈書院)이 대표적이다. 임고서원은 1553년(명종 8)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가 603년(선조 36)에 다시 지으면서, 사액서원이 된 곳이다. 1643년(인조 21)에는 장현광(張顯光), 1727년(영조 3)에는 황보인(皇甫仁)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1965년 정몽주의 위패만을 봉안하여 복원하였고 2001년에는 황보인의 위패도 다시 배향하였다. 경내에는 묘우 표충사, 내삼문 유정문, 강당 흥문당, 정몽주신도비, 유물보호각 삼진각, 문루 영광루, 서재 함육재, 동재 수성재 등이 들어서 있다.
충렬서원은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118번지에 있는 포은 선생 묘역 아래에 있다. 1576년(선조 9)에 포은 선생과 정암 조광조(趙光祖)의 덕망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05년(선조 38)에 경기도 관찰사로 있던 이정구가 현감 정종선, 이시윤 등과 함께 중건하였다. 1609년(광해군 1)에 사액되었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졌다가 1924년 복원되었다. 구조는 사우·서재 각 2칸, 문루 3칸으로, 문루 위층은 강당이며, 문주방(門廚房)과 고직사 등을 갖추었다. 정몽주와 함께 손자 정보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직한 이시직을 배향하였다. 이때 조광조의 위패는 심곡서원으로 옮겨 배향하였다.
북한 개성 선죽동 자남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는 숭양서원은 북한의 사적 제51호로 지정되었다가 국보 문화유물 제128호로 변경되었다. 1573년(선조 6) 개성유수 남응운(南應雲)이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고 서경덕(徐敬德)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개성 선죽교 위쪽 정몽주의 집터에 서원을 세우고 문충당(文忠堂)이라 하였다. 1575년(선조 8) ‘숭양(崇陽)’이라는 사액(賜額)이 내려 국가 공인한 서원으로 승격되었고, 1668년(현종 9) 이후 김상헌, 김육(金堉)·조익(趙翼)·우현보(禹玄寶) 등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경내에는 사당, 강당, 동·서재, 내·외삼문이 있다. 출입문인 외삼문은 5단의 높은 장대석 기단 위에 세운 정면 3칸, 측면 1칸의 민도리계 맞배지붕 건물이다. 특이한 점은 정면과 후면의 주춧돌을 다르게 사용했는데 정면에는 장방형, 후면에는 원형으로 다듬어 사용하였다는 점이다. 기둥은 모두 원기둥을 사용하였다.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마당 안쪽에 강당이 있고 그 앞 양쪽에 동재와 서재가 마주 서 있다. 강당은 높은 기단 위에 세운 정면 5칸, 측면 3칸의 민도리계 팔작지붕집이다. 3칸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온돌방이 1칸씩 있는 구조이다.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하고 내부 천장은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동재와 서재는 각각 정면 5칸, 측면 2칸의 민도리계 맞배지붕집이다. 내삼문으로 들어가면 문충당이라고 하는 사당이 있다. 사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민도리계 맞배지붕집이다. 2칸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1칸 온돌방이 있는 구조이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서 제외된 47서원의 하나로 남아 선현을 봉사(奉祀)하고 지방교육을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이전에 건축된 서원의 전형적인 배치 형식과 구조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