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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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매림서원(梅林書院)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2리
   곽수강(郭壽岡) 오선기(吳善基)
   1707년(숙종 33)
   
   음력 3월 중정(中丁)
   
이 서원은 곽수강(郭壽岡)과 오선기(吳善基)를 추모하여 유림에서 1707년(숙종 33)에 건립하였다. 1868(고종 5)에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고 매림재(梅林齋)로 존속하였다. 1985년 현풍곽씨와 고창오씨 양 문중의 후손들이 중수하면서 서원이 복원되었다. 매년 3월 중정(中丁)에 두 배향인의 향사를 지내고 있다. 최근 입구확장 및 담장설치 공사를 하였다.

1)곽수강(郭壽岡, 1619~1660)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포산(苞山). 자는 진옹(鎭翁), 호는 매헌(梅軒). 아버지는 홍점(鴻漸), 어머니는 이천서씨(利川徐氏) 진사(進士) 적(迪)의 딸이다.
8세에 ≪사략 史略≫을 읽고 서계(書契) 이전의 인황씨(人皇氏) 등의 세대(世代)와 년수(年數) 및 그 때의 국도(國都)들은 도저히 상고(詳考)할 수 없다고 인식하여 선생에게 질문하였고, 12세에 ≪소학 小學≫을 읽고는 사람을 만드는 양서라고 감탄하였다.
16세 때에 성리(性理)와 천리(天理) 및 오행(五行) 등의 이치를 깨닫고 그에 대한 <천인감응 天人感應>이란 설(說)을 지었으며, 효성(孝誠)과 우애(友愛)가 지극하였다. 1654년(효종 5)에 사마시(司馬試)에 합격하고, 1658(효종 9)년에 성균관에 들어가 경의(經義)를 연구하였으며, 이 때 대사성(大司成)이 성균관에 들여 ≪대학 大學≫을 강론(講論)하게 하자, 그 질문에 잘 응답하여 진유(眞儒)라는 칭송을 받았으나 대과(大科)의 응시(應試)에 앞서 죽었다. 저서로는 ≪매헌문집≫이 있다.
 
2)오선기(吳善基, 1630~1703)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고창(高敞). 자는 경부(慶夫), 호는 한계(寒溪).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익전, 어머니는 은진송씨(恩津宋氏) 선무랑(宣務郞) 익(翊)의 딸이다. 30세 되는 해에 부친이 그 이듬해 어머니의 상을 차례로 당하였는데 효행이 지극하였다.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여 어려운 조카와 종제를 기르고 교육시켰으며, 후진양성에도 힘을 기울여 인간교육을 우선으로 가르치니 많은 학생이 찾아들었다. 그의 책상 위에는 항시 성리서(性理書), 공자가어(孔子家語) 등이 놓여 있었고 필법(筆法)도 훌륭하였으며, 근독잠(謹獨箴)을 지어 좌우에 걸어두고 깨우침을 삼았다.
그는 변론하는 학자이기 보다는 실천하는 철인형이었다. 매림서원(梅林書院)·남계사(南溪祠) 등에 봉안 되었다. 저서로는 ≪소학석의 小學釋義≫·≪한계문집≫ 등이 있다.

경내 건물로는 사당인 숭경사(崇敬祠)와, 강당인 중정당(中正堂), 동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최근 외각에 담장을 새로 두르고 입구에 풍방루를 세우고 일곽내에 비각과 육각형의 정자를 신축하였다. 강당의 후면으로는 담장으로 별도의 영역을 구성하고 사당인 숭경사(崇敬祠)를 배치하였다.

1)고령 매림재 소장 판목-경상북도문화재자료
고령 매림재 소장 판목은 매림서원과 관련이 있는 책판 125점, 능화판 1점이다. 매림서원은 1707년(숙종 33)에 곽수강과 오선기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책판은
참고-경북서원지
매림서원 안내판
경북신문 http://kb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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