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금인(琴軔, 1510~1592)
자(字)는 백임(伯任)이고, 호(號)는 송계(松溪)이며,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고려 학사 의(儀)의 후손이며 현감 계(啓)의 손자로 원수(元壽)의 아들이다. 1540(중종 35)년 진사에 급제하였다. 기상이 준엄하고 뜻이 높아 일제기 성균관에 유학하매 선비들이 추중(推重)하였다. 저서로 송계선생문집(松溪先生遺集)이 있다.
2)남몽오(南夢鰲, 1528년~1591년)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경상(景祥), 호는 삼송(三松),삼송당(三松堂)이다.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 남기(南麒)이다.
경전을 널리 읽고 의리를 탐색하여 여러 번 향시(鄕試)에 장원하여 명성이 자자했다. 1573년(선조 6)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1등 4위에 합격했으나 후진교육을 낙으로 삼아 가르치니 많은 선비가 운집하여 성취한 사람이 많았다.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조목(趙穆)·김성일(金誠一) 등과 교류하였다. 퇴계가 지어 준 ‘再行視陶山南洞’이라는 시가 있다. 수서(水西) 박선장(朴善長)은 제자이자 사위인데, 선장이 10세 때 어머니를 따라 경상도 영천(榮川: 지금의 榮州)에 있는 외가에 내려가 남몽오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605년(선조 38) 을사(乙巳)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17위에 급제하여 행 경상도사(行慶尙都事)를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를 추증받았다.
1676년(숙종 2)에 세워진 기영사(耆英祠)에 진사 송계(松溪) 금축(琴軸)·생원 도은(陶隱) 권호신(權虎臣)·사위 박선장과 함께 제향되었다. 기영사는 1766년(영조 42)에 구만서원으로 승격했고,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奉化邑) 화천리(花川里)에 있다.
형 남몽구(南夢龜)와 동생 남몽원(南夢黿), 남몽타(南夢鼉), 남몽별(南夢鼈), 남몽규(南夢虯), 남몽벽(南夢鼊)이 있다.
3)박선장(朴善長, 1555~1616)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여인(汝仁), 호는 수서(水西). 아버지는 북평사(北評事) 전(全)이며, 어머니는 웅천주씨(熊川 朱氏)이다.
4세 때 아버지가 서울에서 돌아가시자, 10세 때 어머니를 따라 경상도 영천(榮川:지금의 榮州)에 있는 외가에 내려가 그의 사부이자 장인이기도 한 남몽오(南夢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봉화화천)
1605년(선조 38) 51세의 늦은 나이에 증광별시(增廣別試)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었고 성리학에 힘썼다. 1608년 예안현감(禮安縣監), 1614년(광해군 6) 경상도사(慶尙都事) 등을 역임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한문시 <박박전가 薄薄田歌>와 시조 <오륜가 五倫歌>가 있으며, 저서로는 이들 작품이 수록된 문집 ≪수서집 水西集≫이 있다.
4)권호신(權虎臣, 1558~1629)
조선 중기의 인물로 자는 백무(伯武), 호는 도은(陶隱), 본관은 안동이다. 인(寅)의 맏아들로 선조 때 생원시에 합격하고,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있었다. 저서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