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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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구만서원(龜灣書院)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화천리 436
   금 인(琴 軔) 남몽오(南夢鰲) 박선장(朴善長) 권호신(權虎臣)
   1596년(선조 29)
   
   3월, 9월 중정(中丁)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54호(1985.08.05지정)
구만서원은 1676년(숙종 2)에 사림(士林)에서 건립하였다. 진사 금인(琴軔), 진사 남몽오( 南夢鰲), 도승지(都承旨) 박선장(朴善長), 참봉(參奉)도은(陶隱) 권호신(權虎臣)등 4현(賢)의 유덕(遺德)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하고 묘호(墓號)를 기영사(耆英祠)라 하다가 1766년(영조 42)에 구만서원(龜灣書院)으로 승격한 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67년 부설하여 춘추제향(春秋祭享)하고 있다.

1)금인(琴軔, 1510~1592)
자(字)는 백임(伯任)이고, 호(號)는 송계(松溪)이며, 본관은 봉화(奉化)이다. 고려 학사 의(儀)의 후손이며 현감 계(啓)의 손자로 원수(元壽)의 아들이다. 1540(중종 35)년 진사에 급제하였다. 기상이 준엄하고 뜻이 높아 일제기 성균관에 유학하매 선비들이 추중(推重)하였다. 저서로 송계선생문집(松溪先生遺集)이 있다.
 
2)남몽오(南夢鰲, 1528년~1591년)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경상(景祥), 호는 삼송(三松),삼송당(三松堂)이다. 아버지는 장사랑(將仕郞) 기자전참봉(箕子殿參奉) 남기(南麒)이다.
경전을 널리 읽고 의리를 탐색하여 여러 번 향시(鄕試)에 장원하여 명성이 자자했다. 1573년(선조 6) 계유(癸酉)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 1등 4위에 합격했으나 후진교육을 낙으로 삼아 가르치니 많은 선비가 운집하여 성취한 사람이 많았다. 퇴계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조목(趙穆)·김성일(金誠一) 등과 교류하였다. 퇴계가 지어 준 ‘再行視陶山南洞’이라는 시가 있다. 수서(水西) 박선장(朴善長)은 제자이자 사위인데, 선장이 10세 때 어머니를 따라 경상도 영천(榮川: 지금의 榮州)에 있는 외가에 내려가 남몽오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1605년(선조 38) 을사(乙巳) 증광시(增廣試) 병과(丙科) 17위에 급제하여 행 경상도사(行慶尙都事)를 지내고, 통정대부(通政大夫) 승정원도승지(承政院都承旨)를 추증받았다.
1676년(숙종 2)에 세워진 기영사(耆英祠)에 진사 송계(松溪) 금축(琴軸)·생원 도은(陶隱) 권호신(權虎臣)·사위 박선장과 함께 제향되었다. 기영사는 1766년(영조 42)에 구만서원으로 승격했고,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奉化邑) 화천리(花川里)에 있다.
형 남몽구(南夢龜)와 동생 남몽원(南夢黿), 남몽타(南夢鼉), 남몽별(南夢鼈), 남몽규(南夢虯), 남몽벽(南夢鼊)이 있다.
 
3)박선장(朴善長, 1555~1616)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여인(汝仁), 호는 수서(水西). 아버지는 북평사(北評事) 전(全)이며, 어머니는 웅천주씨(熊川 朱氏)이다.
4세 때 아버지가 서울에서 돌아가시자, 10세 때 어머니를 따라 경상도 영천(榮川:지금의 榮州)에 있는 외가에 내려가 그의 사부이자 장인이기도 한 남몽오(南夢鰲)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봉화화천)
1605년(선조 38) 51세의 늦은 나이에 증광별시(增廣別試)에 급제하여 성균관전적(成均館典籍)이 되었고 성리학에 힘썼다. 1608년 예안현감(禮安縣監), 1614년(광해군 6) 경상도사(慶尙都事) 등을 역임하였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한문시 <박박전가 薄薄田歌>와 시조 <오륜가 五倫歌>가 있으며, 저서로는 이들 작품이 수록된 문집 ≪수서집 水西集≫이 있다.
 
4)권호신(權虎臣, 1558~1629)
조선 중기의 인물로 자는 백무(伯武), 호는 도은(陶隱), 본관은 안동이다. 인(寅)의 맏아들로 선조 때 생원시에 합격하고, 학문과 효행으로 이름있었다. 저서로

구만서원은 마을 뒷편 산자락 끝에 북향으로 배치되어 있다. 경내에는 사당인 상현사(象賢祠), 강당인 흥교당(興敎堂), 출입문인 신문(神門), 관리인의 거주지로 쓰이는 주소(廚所) 등이 있다. 사당인 상현사(象賢祠)과 강당이 각기 별곽을 이루면서 좌우에 나란히 병렬로 자리잡고 있다. 사당과 강당 전면 담장에는 각기 삼문과 사주문을 두고 사당과 강당 사이의 경계담에는 두 건물을 오갈 수 있는 일각문을 내었다.
1)강당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가운데 대청을 두고 좌우측에 온돌방을 놓았다. 정면에는 쪽마루가 설치되어 있는데 아궁이가 있는 좌우 온돌방 앞쪽 부분은 연소를 고려하여 약간 높게 했다.
 
2)사당
위패를 모시고 있는 상현사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참고-경북서원지
문화재청 http://www.cha.go.kr/
한국의 고건축 DB http://ta.mmpia.co.kr/
한국연대인물종합정보시스템 http://people.aks.ac.kr/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