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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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봉산서원(鳳山書院)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거촌리 563
   김종걸(金宗傑)
   1793년(정조 17)
   
   3월, 9월 중정(中丁)
   봉산리사(鳳山里社)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49호(1985.08.05지정)
봉산리사는 상운에서 봉화읍 가는 도중 황전마을 가기 전에 있다. 워낭소리 촬영지인 하눌리 입구를 지나 고개를 넘어 군부대 들어가는 입구의 사거리를 지나서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 가다가 오른쪽 도로변에서 약 100m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산골짜기 모퉁이에 있다. 승용차 출입이 가능하며, 임시로 지은 듯한 가건물 형태의 관리사가 있다. 건물의 본래 위치는 알 수가 없지만, 봉
산리사 들어가는 문 뒤에 남덕사(藍德祀)라는 떨어진 현판이 놓여있고, 진도문도 본 건물과 따로 떨어져 한편에 있다. 정면 대청마루에 에 봉산리사/봉산서당이라는 현판이 있고 좌우에 제관실로 사용되던 방들이 있는 것을 보아 후학들을 가르치는 서당으로도 사용된 듯하다. 봉산리사는 조선 중기 문신인 황파 김종걸(1628∼1708)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들이 세운 건물이다. 선생은 학문과 덕행에서 뿐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병들자 소태산에 올라가 7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다. 그 후 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인도하여 명약을 구해 부모님의 병을 낳게 했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그는 죽은 뒤에 이조 참판으로 추대되었다.
정조17년(1793)에 세운 이 사당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 폐쇄되었다가 1925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관실(祭官室)이 딸린 문간채와 一자형의 본채가 어우러 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앞쪽에는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1)김종걸(金宗傑)
조선중기의 인물로 자는 국경(國卿), 호는 황파(黃坡), 본관은 의성이다. 아버지는 통록랑 해윤(海潤)이며, 어머니는 봉화금씨로 성현(聲賢)의 딸이다.
김종걸(金宗傑)은 학문과 덕행뿐만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의 병을 고치기 위해 소태산(小太山)에 기천단(祈天壇)을 설치(設置)하고 7일간 금식하며 하늘에 기도한 후 약을 구하러 나서니 호랑이가 길을 인도하여 명약을 구해 부모의 병을 치유하였다는 미담이 전하며 서거후 지방사림의 추록으로 동지의금부사 가선대부 이조참판(同知義禁府事嘉善大夫吏曹參判)을 추서(追敍)받았다. 저서로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남덕사(濫德祠), 8칸의 봉산당(鳳山堂), 신문, 정문인 진례문, 6칸의 고직사 등이 있다. 봉산서원은 봉산리사라고도 불리며, 인근 황전마을의 의성김씨 문중 소유의 서원이다. 남덕사와 삼문으로 이루어진 사당영역이 남서향을 하고, ‘一’자형의 강당과 ‘ㄷ’자형의 고직사가 ‘ㅁ’을 이루며 사당영역과 직각으로 배치되어 북서향을 하고 있다.

참고-경북서원지
문화재청 http://www.cha.go.kr/kor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