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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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봉강서원(鳳崗書院)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동 230
   강회중(姜淮仲) 강 형(姜 詗)
    1817년(순조 17)
   
   음력 3월 중정(中丁)
   
1817년(순조 17) 강세백(姜世白)이 고려절신인 강회중(姜淮仲)과 갑자사화 피화인 강형(姜詗)을 배향한 경덕사(敬德祠)를 봉대(鳳臺)에 창건하였으며, 이후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훼철하였으나, 1976년 옥동서원의 발의로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990년 중건하였으며, 1998년 경덕사(景德祠)를 중건하였다. 매년 3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1)강회중(姜淮仲, 1359~1421)
자는 중부(仲父), 호는 통계(通溪)이고, 본관은 진주이다. 진산군 시(蓍)의 아들이며, 1382년에 유량(柳亮)의 방에 올랐다. 보문각대제학을 역임하였다. 고려가 망한 후에 태조와 세종이 여러 차례 불렀으나 모두 나아가지 않았다.
 
2)강형(姜詗, 1451~1504)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형지(詗之). 안수(安壽)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휘(徽)이고, 아버지는 관찰사 자평(子平)이며, 어머니는 의성군(誼城君) 이채(李寀)의 딸이다. 1490년(성종 21)에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그해에 정언(正言)으로 등용되고, 이듬해에 지평(持平)이 되었다.
1495년(연산군 1)에 장령(掌令)이 되고 그뒤 벼슬이 누진되어, 1504년에 대사간이 되었다. 같은 해에 일어난 갑자사화 때에 연산군이 생모인 폐비 윤씨를 왕후로 복위하고 신주를 묘(廟)에 안치하려는 데 반대하다가 그 우두머리로 지목되어 사위인 허반(許磐)과 함께 능지처참되었다.
아우인 군수 겸(謙)도 형의 죄에 연좌되어 북쪽 변방에 유배되었다가 죽었다. 천성이 너그럽고 공평하고 후하였으나, 올바른 일에는 소신을 굽히지 않는 강직한 선비였다. 아내 김씨는 한달 동안 먹지 않고 슬피 울다가 죽으니, 1507년(중종 2)에 정문을 세워 표창하였다. 중종 초년에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경내의 주요 건물로는 경덕사(敬德祠)와 강당이 일직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전학후묘의 배치형식을 따르고 있으며, 서원으로의 출입문은 숭덕문과 내삼문은 솟을문 형식이다. 또한 비석 1기가 있다.


참고-경북서원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