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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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무원서원(武原書院)
   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왕산리 974
   하 연(河 演)
   1630년(인조 8)
   
   2월, 8월 중정(中丁)일
   
1630년(인조 8)에 영천유림에 의해 창건되었으나,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대략 70년쯤 전에 복원하였다. 하연(河演)과 정경부인(貞敬夫人) 성주이씨의 부부 영정을 봉안하였다.

1)하연(河演, 1376~145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옹(新稀翁). 즙(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윤원(允源)이고, 아버지는 부윤 자종(自宗)이며, 어머니는 정우(鄭寓)의 딸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다.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상시녹사를 거쳐, 직예문춘추관수찬관(直藝文春秋館修撰官)이 되고, 이어 집의·동부대언 등을 역임하였다. 이 때 태종은 그가 간관(諫官)으로서 의연한 자세로 일을 말하는 것을 보고 손을 잡고 치하했다 한다.
세종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조심스럽게 처사하여 신임을 받아 예조참판·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423년(세종 5)에는 대사헌으로서 조계종(曹溪宗) 등 불교 7종파를 선(禪)·교(敎) 양종(兩宗), 36본산으로 통합하고, 혁파된 사원의 토지와 노비는 국가로 환수하고자 하여 채택받았다.
1425년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예조참판을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가 한때 천안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유배에서 풀려 형조·병조의 참판을 거쳐 1431년에 대제학이 되고, 그 뒤 대사헌·형조판서·좌참찬 등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1437년 의정부에 들어가서는 판이조사로서 이조의 일을 맡아 공세법(貢稅法 : 연분9등, 전분6등)을 마련했으며, 1442년에는 각품의 행수법(行守法)을 제정하였다. 1445년에 좌찬성이 되어 70세로서 궤장(几杖)을 받았다. 이어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49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영의정으로 있던 1451년(문종 1)에 문종이 대자암(大慈庵)을 중수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고 치사(致仕)하였다. 의정부에 들어간 지 20여 년 간 문안에 사알(私謁)을 들이지 않았고 법을 잘 지켜 승평수문(昇平守文)의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1454년에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숙종 때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 합천의 신천서원(新川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서로 ≪경상도지리지 慶尙道地理志≫·≪진양연고 晉陽聯藁≫가 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무원서원은 전학후묘의 배치형태로 정면에 강당이 위치하고, 강당의 후면에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숙청각(肅淸閣)인 사당과 강당·동재·서재·문간채 등 총5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서재의 경우 관리자가 거주하여 편의상 입식구조로 변경하였기 때문에 그 구조적 특징을 알 수 없다.


참고-한국국학진흥원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