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벽): 송계 한덕련(竦溪 韓德鍊)
송계 한덕련(竦溪 韓德鍊 : 1881~1956)선생의 본관은 청주이며 호는 송계다. 이조말엽인 고종18년 당시 신녕현(현 영천시 신녕면)의 노곡에서 태어났다. 한일합방 후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군위군 고로면에 소재한 화산(華山)의 산중으로 들어가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방해로 계속 머무르지 못하고 다시 군위군 산성면과 영천군(현 영천시) 임고면의 매호리 등지로 다니면서 후학을 가르치다 만년에 신녕의 연정리로 와서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선생은 어려서부터 군자의 자질을 타고나 성품이 온화하고 학문을 즐겨하여, 만 15세에 이미 선비의 경지에 이르러 유가의 경전은 물론 제자백가서에 정통하였으며, 일생을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 일관하여 자신의 수양에 힘쓰셨다.
선생은 벼슬을 멀리하고 당파에 관여하지 않았으며, 일제의 창씨령(創氏令)에 불복하고 광복이 되자 향민(鄕民)들의 불란하던 민심을 수습하고 규약을 정하여 자립의욕을 고취하였다. 선생은 후진 양성에 전념하였을 뿐만 아니라 학문을 행동으로 몸소 실천하는 궁행실천(躬行實踐)의 도학자로서 당대에 명성이 자자하였다. 특히 군위 의성 영천 등지에서는 소꼴을 베는 아이들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선생의 높은 덕망에 감동하여 존모(尊慕)치 않는 이가 업었다 전한다. 선생의 유품에는 친필병풍(親筆屛風) 수택본(手澤本) 등이 보존되어 있고, 저서에는 규문요람(閨門要覽)과 문집(文集) 20권 8책 속집(續集) 3권 2책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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