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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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월계서원(月溪書院)
   경상북도 울진군 고성2리 708
   장말익(張末翼) 장양수(張良守)
   1856년(철종 7)
   1862년(철종 13)
   10월 중정
   장양수급제패지(張良守及第牌旨) -국보 제181호(1975.10.13지정)
월계서원은 울진장씨의 관시조인 장말익(張末翼)과 그의 8세손인 장양수(張良守)를 배향하고 있다. 1856년(철종 7)에 울진읍 호월리 무월동에 향내 사림들의 장계(狀啓)에 의하여 월계사(月溪祠)가 창건되었고, 1862년(철종 13)에는 월계서원이라 사액되었다.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가, 1924년과 1925년에 향내(鄕內) 유림에서 고성리 가원동으로 이건하여 세덕사(世德祠)라 하였다. 3년 후에 경덕사(景德祠)로 개칭하였고, 광복과 더불어 월계서원이라 복칭(復稱)하였다. 1975년에 국보각(國寶閣)을 건립하고, 1976년에 서원을 중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1)장말익(張末翼)
선생의 휘는 말익(末翼)이요, 호는 매계(梅溪)이며, 시호는 문성(文成)이니, 도덕박문(道德博文)함이 문(文)이요, 안민입정(安民立政)함은 성(成)이리라. 선생은 고려태사(高麗太師) 충헌공(忠獻公) 포음(圃蔭) 선생의 현손이며, 평장사(平章事) 송계(松溪)선생 휘 지현(之賢)의 다섯째 아들로서 고려 정종(靖宗)때 탄생하여 문과(文科)에 급제하고 벼슬이 호부상서문하시중 평장사상주국(戶部尙書門下侍中 平章事上柱國)에 이르렀고 울진부원군(蔚珍府院君)에 봉해 져서 채읍(采邑:城主로 재직)하고 있을 때 청렴결백하게 선치(善治)하여 백성을 사랑하니 믿음과 은혜가 향중에 가득하여 고루고루 돌아가 온 고을 백성이 교화되어 감복하였다. 자손들이 이로 인해 관향(貫鄕)으로 삼아 시조(始祖)로 모셨다.
선생이 삭방도(朔方道) 안렴사(按廉使)로 있을 때 본군 읍성인 산내성(山內城:화성리 성내동)을 순시하니 성내 지형이 협소하여 성(城)을 넓이고 성축(城築)을 높이 쌓았다. 그러나 선생의 풍성한 공적이 마땅히 후세에 빛날 것이나 오랜 지난날 여러번 병화(兵火)를 겪어서 묘소와 문적(文籍)이 전하지 못하여 위대한 업적이 역사에 빛을 보지 못함이 아쉬운 일이나, 월계서원 동쪽 언덕에 자손들이 설단(設壇)하여 매년 3월 3일 삼진에 제향하고 있다.
 
2)장양수(張良守)
선생의 휘는 양수(良守)이니, 고려태사(高麗太師) 충헌공(忠獻公) 포음(圃蔭)선생의 12세손 이며, 울진부원군(蔚珍府院君) 매계(梅溪)선생 말익(末翼)의 8세손이다. 선생은 1205년 고려 희종(熙宗) 원년 진사시 병과에 급제하여 봉익대부(奉翊大夫) 전리판서(典理判書) 상호군(上護軍) 등의 벼슬에 이르렀고 일찌기 중국사신(中國使臣)으로 갔다 온 업적과 나라에 많은 공덕을 남겼다. 선생이 관리등용시험(官吏登用試驗)을 응할 때 문권(文券)들은 전쟁불속에서 소멸되었을 소용돌이 가운데서도 다행이 홍패보첩(紅牌寶牒:급제패지)만은 유일하게 유전(遺傳)되어 문장(文章)과 덕업유풍(德業遺風)이 온 세상사람들에게 환하게 비춰주어 흡사 그 당시의 상황을 그대로 알게 되니 보(寶)중에 보(寶)라 아니할 수 없다. 이 홍패 급제패지(及第牌旨)는 779년만인 1975년 10월 13일자로 정부로부터 국보(國寶) 제181호로 지정등록되어 본군 월계서원내(月溪書院內) 국보각(國寶閣)에 소장되어 있어 현존하는 우리나라의 패지(牌旨) 가운데 가장 오래된 홍패지이며, 행정문서로서 문중의 자랑이요, 울진의 보물이다.
선생의 묘소는 미상으로 본 군 후정2리 매정동(梅亭洞) 용호언덕(龍虎原)위에 후손들이 설단(設壇)하여 제향하고 있으며, 1856년 철종(哲宗) 7년에 향내사림(鄕內士林)들이 호월리(湖月里) 무월동(舞月洞)에 월계사(月溪祠)를 짓고 문성공(文成公) 장말익(張末翼)선생과 함께 봉향(奉享)되어 1862년 철종(哲宗)13년 4월에 예조에 의하여 월계사가 월계서원(月溪書院)으로 승격되고 1868년 고종(高宗)5년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철폐되었다가 1924년 사림(士林)들이 사당을 고성2리 가원동(佳原洞)에 이건하고 1945년 광복을 맞아 월계서원(月溪書院)이 복칭(複稱)되어 서원내 경덕사(景德祠)에 문성공(文成公)과 함께 매년 10월 중정일(中丁日)에 향례(鄕禮)의 의식에 의한 향사(享祀)를 올리고 있다. 신도비는 월계서원 남쪽 언덕위에 울진 부원군(蔚珍府院君) 장말익(張末翼)선생과 나란히 세워져 있다.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로는 경덕사(景德祠)·내삼문·외삼문·월호정사(月湖精舍)·국보각·재실 등이 있다.
경덕사는 향사(享祀)를 지내는 6칸 규모의 사우(祠宇)이며, 장말익과 장양수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월호정사는 강당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 반 규모로 월계강당(月溪講堂)과 월계서원(月溪書院)이라는 두 개의 현판을 달고 있다. 지붕은 골기와로 팔작지붕을 이었다. 평면은 좌우에 온돌방을 들인 중당협실형으로 앞면에는 반 칸 규모의 퇴칸 마루를 설치하였다. 국보각에는 국보 제181호인 장량수급제패지(張良守及第牌旨)가 보관되어 있고, 8칸 규모의 재실에는 서원을 지키는 고직이 거처하고 있으며 가원재사(佳原齋舍)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월계서원 남쪽 언덕위에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10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재산으로는 전답 5,500평과 임야 7정보 등이 있다.

1)장양수급제패지(張良守及第牌旨)-국보 제181호(1975.10.13지정)
월계서원에는 우리나라의 행정 문서로는 가장 오래된 장양수 급제패지가 소장되어 있다. 장양수가 1205년(희종 1)에 진사시 병과에 급제하여 내려진 급제패지는 현재 남아 있는 실물 4건과 전사(轉寫)되어 전해지지는 2건 등 총 6건의 고려 홍패 중 가장 오래된 실물로서 국보 제181호로 지정되었다. 월계서원의 사당인 경덕사(景德祠) 옆에 따로 국보각(國寶閣)을 지어 금고 안에 소중히 보관하고 있으며, 외부에는 모사본(摸寫本)을 전시하고 있다.
장양수 급제패지에는 세로 44㎝, 가로 88㎝의 누런색 마지(麻紙) 두루마리에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로 종 12줄이 기록되어 있는데, 학자들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불과 몇 자의 결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해독이 가능하다고 하나 육안으로는 ‘우인장양수교가병과교고첩급제패지(右人張良守敎可丙科敎古牒及第牒旨)’ 등의 글자가 어렴풋이 보인다.

참고-한국국학진흥원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