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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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인흥서원(仁興書院)
   대구광역시 달성군 화원읍 본리 730
   추 황(秋 篁) 추 적(秋 適) 추 유(秋 濡) 추수경(秋水鏡)
   1825년(순조 25)
   
   3월 중정(中丁), 10월 초 3일
   명심보감판목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37호(1995.05.12지정) 담초 -경상북도유형문화재(1985.10.15지정)

추계 추씨(秋溪秋氏)의 시조이며 고려 말기의 문신인 추적(秋適)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며 후에 추황(秋篁), 추유(秋濡), 추수경(秋水鏡)을 추가배향하였다. 1825(순조 25) 108도유림과 20대손인 추세문이 뜻을 모아 창건하였으며, 1868(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의 화를 피하여 창건 당시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1)추황(秋篁, 1198~1259)

초명(初名)은 영수(永壽). ()는 회암(悔庵), 시호(諡號)는 문정(文正), 시조(始祖) 엽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영민하여 1209(희종 5)에 진사시(進士試)에 장원 급제하고 1213(강종 2) 문과(文科)에 급제하였다. 시랑(侍郞)으로 재임 중에 몽고군의 대대적인 침입으로 강화도로 서울을 옮기게 되었고 이때 임금을 잘 보필한 공적으로 여러 청요직을 역임하고 이어서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예부 상서(禮部尙書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이 되었다. 이때 진양공(晋陽公) 최우(崔瑀)의 명유우대정책(名儒優待政策) 때문에 학자의 본분을 다할 수 있었으며 성품이 온유하고 이해와 명분 사이에 구차한 뜻이 없었고 항상 담소자약(談笑自若)하였다. 저서(著書)로는 조의혼상제례(朝儀喪祭禮)가 있었으나 지금은 책명(冊名)만이 전한다.


2)추적(秋適, 생몰년 미상)

고려 고종 331246년 명오생이다. 12고려 후기의 문신. 추계추씨(秋溪秋氏)의 삼세(三世)조이다. 호는 노당(露堂). 충렬왕초 과거에 급제하여 안동서기(安東書記직사관(直史館)을 거쳐 좌사간(左司諫)에 올랐다.

1298(충렬왕 24) 환관 황석량(黃石良)이 권세를 이용, 자신의 고향인 합덕부곡(合德部曲 : 현재 충청남도 당진군 합덕읍)을 현()으로 승격시키려고 할 때, 그 서명을 거부하자 황석량의 참소로 순마소(巡馬所)에 투옥되었다. 뒤에 풀려나와 시랑으로서 북계 용주(龍州)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충렬왕 말년 안향(安珦)에 의하여 발탁되어 이성(李晟최원충(崔元冲) 등과 함께 7품 이하의 관리, 혹은 생원들에 대한 유학교육을 담당하였으며, 한문교양서인 명심보감을 편찬하였다고 한다. 민부상서(民部尙書예문관제학에 이르러 치사(致仕)하였다.


3)추유(秋濡, 1345~1404)

자는 윤지(潤之), 호는 운심재(雲心齋덕암(德庵), 1362(공민왕11) 성균시(成均試)에 급제하여 호부 상서(戶部尙書)를 역임하였다.


4)추수경(秋水鏡, 1530~1600)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청하(淸河), 호는 세심당(洗心堂). 추계추씨(秋溪秋氏) ()의 후손이며, 안찰사 섭()의 현손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병부상서 서()이고, 아버지는 이부시랑 천일(天日)이다.

중국 오현군(五賢郡) 출신. 1591(선조 24) 명나라의 무강자사(武康刺史)가 되었다. 이듬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이여송(李如松)을 따라 부장(副將)으로 아들 노(()을 데리고 원병의 일원으로 환국하였다.

그 뒤 곽산·동래 등지에서 많은 전공을 세우고 전주에서 전사하였다. 완산부원군(完山府院君)에 추봉됨으로써 후손들이 본관을 전주로 삼았다. 부여의 충현사(忠賢祠)에 제향되었다.

서원은 낮은 산자락에 동향으로 자리잡고 있는데, 총면적 3,861이며 모두 5동의 건물이 있다. 전면 5, 측면 2칸의 규모에 팔작지붕을 한 강당, 전면 3,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인 사당 문현사(文顯祠), 동재, 정면3칸 측면1칸반, 서재, 장면3칸 측면 1칸반 외삼문인 숭봉문, 신도비 등이 있으며 문현사 오른편에는 장판각이 있다.

인흥서원에는 명심보감(明心寶鑑), 조군영적지(竈君靈蹟誌), 추계가승(秋溪家乘), 추계가승속편, 추계가승집록등의 책판이 소장되어 있다.


1)명심보감판본(明心寶鑑板本)

-대구광역시유형문화재 제37(1995.05.12지정)

이 판본은 추계 추씨인 추적 선생이 편저한 것이다. 추적은 고려 원종 2(1260) 문과에 올라 민부상서 예문관제학을 지냈다.

명심보감은 공자 등 제자백가의 책과 시부 가운데서 쉽고 생활에 기본이 되는 내용을 골라 엮은 책인데, 이것은 국가에서 세운 학교의 학생들에게 심성수양의 기본서로 삼기 위함이었다.

현재 전하는 것은 고종 6(1869) 추세문이 출판한 인흥재사본이 전수되어 국역 출판됨으로써 가정,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널리 쓰여왔다. 이것은 총 31장으로 인흥서원의 목판이 유일하다.

이 판목은 중국, 일본에도 널리 보급되었으며, 영문으로도 번역되어 한국학 연구의 자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참고-한국국학진흥원편,'경북서원지', 2007.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문화재청 http://www.cha.go.kr/

대구광역시 http://child.daegu.go.kr/

신종우의 인명사전 http://www.shinjongwoo.co.kr/


사진-다음블로그 내일의 어제’ http://blog.daum.net/bosar/

<내이름은아무따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