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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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자암서원(紫巖書院)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통천리
   차원부(車原頫) 차운혁(車云革)
   1804년(순조 4)
   
   9월 중정(中丁)
   
1804년(순조 4) 연안차씨 주도로 웅촌의 통천리에 건립되었으며 차원부(車原頫), 차운혁(車云革)을 배향하였고 1868년 훼철되었다가1919년 복원되었다. 자암서원 철폐 때 문절공 차원해의 위패와 쌍청단 강절공 차원혁의 위패를 통천리 앞들 회야강 건너편 산 631번지에 제단(祭壇)을 설치하여 두 분의 위패를 모셔놓고 제사를 지냈다. 壇이 있었다하여 지금도 강단(江壇)이라 부르고 있다. 서원이 철폐될 때 건물의 목재는 통천리 앞들 당산나무 옆에 이엉을 엮어 덮고 쌓아 두었는데 수십 년 세월 속에 풍우에 썩고 홍수로 유실되고 말았다. 복원 당시에는 동민 모두가 합심하여 일을 했다.

1)차원부(車原頫, 1320∼1398)
고려 말 조선 초의 학자·화가.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사평(思平), 호는 운암(雲巖). 지방어사(知防禦使) 종로(宗老)의 아들이다.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한 이후 여러 벼슬을 역임하고, 간의대부(諫議大夫)에 이르렀다. 당대의 대학자인 정몽주(鄭夢周)·이색(李穡) 등과 함께 명성을 떨치던 유학자로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다. 고려 말 정치가 문란하여지자 수습할 수 없음을 알고 관직을 사퇴한 뒤 평산(平山)의 수운암동(水雲巖洞)에 은거하였다. 이성계(李成桂)가 요동(遼東)을 공격하게 되어 그 계략을 묻자 출병을 반대하였다.뒤에 위화도회군으로 조선이 개국하였을 때 태조가 공신으로 책록하려 하였으나 굳이 사퇴하고, 이어 정언·판전농시사(判典農寺事)등의 벼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찍이 정도전(鄭道傳)·하륜(河崙) 등이 차씨(車氏) 외손의 서속(庶屬)이었음을 사실대로 족보에 기재하여 그들의 원한을 받아오던 중 평산으로 돌아가려고 송원(松原)에 이르렀을 때, 숙적 하륜 등이 보낸 자객에게 가족 및 일당 80여 인과 함께 살해되었다. 당시 고려에 충성을 다하던 두문동(杜門洞) 72인의 한 사람으로서 그림을 잘 그렸으며, 특히 매화에 뛰어났다.세종 때 황보 인(皇甫仁)의 청원으로 신원되어 시중에 추증되고, 순천의 운암사(雲巖祠)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2)차운혁(車云革, 1393~1467)
자(字)는 홍기(弘器), 호(號)는 송암(松庵), 시호(諡號)는 강렬(剛烈)이다. 조선 때 일시 길주(吉州) 등지로 피적(被謫)되었다가 단종(端宗)때 풀려나와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은거(隱居)했다.
세조(世祖) 때 우림위겸사복(羽林衛兼司僕)이 되고, 1467년 이시애(李施受)의 난(亂)이 일어나자 선봉대장(先鋒大將)으로 적(敵)의 남하(南下)를 막다가 적장 최윤손(崔潤孫)과 교전 끝에 사로잡혀 순절(殉節)하였다. 난(亂)이 평정(平定)된 후 정충출개포의(精忠出愾布義) 2등훈(等勳)에 추록(追錄), 병조참판(兵曹參判)에 추증(追贈), 연천군(延川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운대(芸臺)에 공(公)을 기록, 인각(麟閣)에 도형(圖形)하여 중종조삼강행실록충신편(中宗朝三綱行實錄忠臣篇)에 넣고 제시이수(製詩二首)를 명(命)하였다.

1919년 자암서원은 통천리의 연안차씨 문중에 의해 다시 복원 되었다. 1928년 현 위치에 문을 세워 유도문(由道門)이라고 하고, 당은 인호당(仁皓堂), 묘는 의열당(義烈堂)으로 하여 각각 건물을 다시 세웠다. 이 때 비각도 세웠다. 강단(江壇)에 있는 두 분의 위패를 의열당에 다시 모셔와 불천위로 모시고 있다. 자암서원 원기(院記)는 판서 조병덕이 찬(撰)하고 상량기는 지평 이근오가 찬(撰)하고 봉안문(奉安文)은 진사 윤병이(尹秉頣)가 찬(撰)하고 상량축문은 참판 김낙수(金樂洙)가 찬(撰)하고 비각명은 승지 이만도(李睌燾)가 찬(撰)했다고 전한다. 중건기는 장석영 선생이 찬(撰)하고 현판글씨는 차진익 주사가 휘필(揮筆)하였다. 서원건물(書院建物)은2005년에 개축(改築)하고 이어서 의열사(義烈祠), 3문(三門), 비각(碑閣)은 개와개체(蓋瓦改替)하고 보수(補修)하였다.
매년 음력구월 중정일 축시(丑時)에 제향을 올렸으나 근래는 동일사시(同日巳時)에 올리고 있으며 참례는 차씨(車氏)문중과 울산유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