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산서원 고문서-부여군향토유적 제68호(2004.12.22지정)
부산서원은 인조․효종년간에 학계와 정계에서 크게 활약한 김집과 이경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역유림들의 공론에 의해 창건된 서원이다. 이후 훼철된 서원의 복설을 위하여 1970년대 “부산서원 복설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어 삼문과 설단을 하였으며 1977년 충의사(忠義祠) 건물을 완성하였다. 서원이 훼철되면서 주로 18세기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고문서들은 전주이씨 문중에서 소장 중으로 창건당시 유사(有司)이상을 기록한 창건소 제명록, 서원임원명단, 규약, 서제의 유생명단, 전곡관계를 정리한 문서, 노비대장 등이 있다.
2)부산각서석(浮山刻書石)-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7호(1976.01.08지정)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 백마강가 암벽에 새겨진 글씨. 효종 때 명신 이경여(李敬輿)가 1657년(효종 8)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고자 북벌계획에 관계된 정세의 득·실을 논하여 상소를 올렸는데 효종이 비답(批答)을 내렸다.
그 중에 “경의 뜻이 타당하고 마땅하지만 진실로 마음이 아프나 뜻을 실현하기에는 너무 늦다(誠以至痛在心 有日暮途遠意).”라는 구절이 있었다.
후에 송시열(宋時烈)이 그 뜻을 기려 “至痛在心 日暮途遠(지통재심 일모도원)”의 8자를 써서 아들 민서(敏敍)에게 전한 것을 손자 이명(頤命)이 1700년(숙종 26)에 이 암벽에 글씨 8자를 새기고 건물을 지었다.
이 정자의 이름을 대재각(大哉閣)이라 했는데, 이것은 이경여가 효종의 비답을 받았으므로 ≪상서 尙書≫의 “크도다 왕의 말씀이여(大哉王言)”라는 구절에서 따온 것이다.
글씨의 필체가 힘차고 강건하여 금석문의 자료로도 좋을 뿐 아니라, 당시 벼슬을 그만두고 초야에 내려와서도 북벌계획을 왕과 협의하고 토론하던 노재상의 굳은 정신이 담겨진 교훈적인 각서(刻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