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1. 홈
  2. 로그인
  3. 회원가입

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백현서원(栢峴書院)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1046
   구 영(具 瑩)
   1668년(현종 9)
   
   음 2월, 중정(中丁)
   
1668년(현종 9)에 창건(創建)하였으며, 서원철폐 때 훼철(毁撤)되었다가 1903년 설단(設檀) 향사(享祠)하였다. 1961년에 정부보조금으로 중건(重建)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주벽-구영(具瑩, 1584∼1663)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자는 영연(瑩然)이요, 호가 죽유(竹牗)며, 본관은 능성(綾城)이다. 대윤(大倫)의 아들로 1584년(宣祖 17)에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에서 출생하였고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어려서부터 총영이범(聰穎異凡)하고 자품(姿禀)이 단아(端雅)하며 기도(器度)가 온화(溫和)하고 언어(言語)가 신중(愼重)하며 학문(學文)이 고명(高名)하였다. 이 식(李 植)과는 동문수학(同門修學)으로 평생(平生) 지기(知己)로 죽유(竹牖)라는 호(號)도 그의 소작(所作)이다. 이태형(李泰亨)ㆍ김동준(金東準)ㆍ유 집(柳 楫)ㆍ박안행(朴安行)ㆍ송시열(宋時烈) 등과 종유(從遊)하였다. 1612년(光海 4) 진사(進士)에 합격하였고, 광해정난(光海政亂)에 폐모흉론(廢母凶論)이 일어나자 전주(全州) 유응원(柳應元)이 호응(呼應)하는 상소를 올린다는 소문을 듣고 달려가 유생(儒生)들을 모아 반대 상소(上訴)를 작성하고 유응원의 상소를 소각(燒却)하였다. 1626년(仁祖 4)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활인서별제(活人署別提)가 되었다.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김장생(金長生)이 불러 정홍명(鄭弘溟)의 막하(幕下)에서 군무(軍務)를 보게하였다. 이 공(功)으로 1628년 영사소무원종일등공신(寧社昭武原從一等功臣)에 녹훈(錄勳)되고 사도직장(司䆃直長)에 올랐고, 1630년(仁祖 8)에 부사과(副司果)가 되었다. 이때 쥐떼가 임진강(臨津江)을 넘어오는 것을 보고 장차 병자년(丙子年)에 변란(變亂)이 있을 것을 알고 귀향(歸鄕)하여 후학 양성에 힘쓰며 향약(鄕約)을 만들어 풍교(風敎)를 진작(振作)시켰다. 1637년(仁祖16)에 와서별제(瓦署別提) 1639년에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에 이르렀고, 1641년(仁祖19)에 회인현감(懷仁縣監)이 되어 선치(善治)하다가 1643년 벼슬에서 물너나 향리(鄕里)로 돌아와 후진(後進) 교육(敎育)으로 일생을 마쳤다.

사당인 백현사에는 정묘호란 때에 호남과 영남을 끼고 청군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주장하였던 구영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고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그 외 내·외삼문이 각 3문으로 되어있다.
강당인 정안당은 1682년(숙종 8)에 구영의 형 구휘에 의하여 고산향교 남쪽에다 세웠던 것인데, 1688년(숙종 14)에 이곳으로 옮기었다. 그 뒤 1840년(헌종 6)에 보수하였고, 1866년에 헐리었던 것을 1922년에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완주군지199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전북향교원우대관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