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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벽-허진동(許震童, 1525∼1610)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태인(泰仁). 자는 백기(伯起), 호는 동상(東湘). 아버지는 병절교위(秉節校尉) 강(剛)이며, 어머니는 충주박씨(忠州朴氏)로 증영의정(贈領議政) 우(祐)의 딸이다. 박순(朴淳)의 문인이다. 1572년(선조 5) 문과의 초시삼장(初試三場)에 합격하였으나, 당시에 그의 외숙(外叔)이자 스승인 박순이 등극하사(登極賀使)로서 명(明)나라에 들어가자, 그는 복시(覆試)에 응시하지 않고 중국의 문물을 관람하기 위하여 수행하여 ≪조천록 朝天錄≫을 남기었다. 1574년(선조 7) 대신들의 특천(特薦)으로 사산감역(四山監役)에 임명되고, 그 뒤로 예빈시참봉(禮賓寺參奉)·삼례찰방(參禮察訪)·수운판관(水運判官) 등을 역임하였다. 만년에는 벼슬에서 물러나 부안(扶安)의 변산(邊山) 우반동(愚磻洞)에 은거하였는데, 당시에 정여립(鄭汝立)이 찾아와 변산에 별장을 지은다면서 그의 선산(先山)의 재목을 벌채해 쓰자고 요청하니, 그는 정여립의 사람됨을 미워하여 정색하고 거절하였다. 저서로는 ≪동상집≫ 2책이 있다. 2)김횡(金鋐, 1541~?) 조선 중기 유학자, 자는 여기(汝器), 호는 죽계(竹溪), 본관은 부녕(扶寧), 경정의 아들로 1541년(중종 36) 부안에서 출생하였으며1573년(선조 6) 진사에 들고, 그 뒤로 생원이 되었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오로지 학문에 전심하여 성리학에 심취하였다. 천거로 경기전 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홍복상, 이연구 등과 도의로 교유하였다. 3)김명(金銘, 1545~1619) 조선 중기의유학자이다. 자는 여신(汝新), 호는 화곡(火谷), 본관은 부녕(扶寧), 1545년(인조 1)에 부안에서 출생, 1606년(선조38)에 생원 진사에 모두 들었다. 이이, 기대승 등과 도의로 사귀었다. 4)김택삼(金宅三, 1649~1703) 조선 중기의 유학자, 호는 농암(礱巖), 본관은 부녕(夫寧)이다. 1619년(광해군 11)에 부안에서 출생, 학행으로 천거되어 참봉(參奉), 별검(別檢), 주부(主簿) 등으로 불렀으나 나가지 않았다. 효성이 지극하였고 친상에 3년 시묘하였다. 송시열, 김수항 등과 도의로 교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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