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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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수림서원(繡林書院)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화산리 998
   배현경(裵玄慶) 배정지(裵廷芝) 배인경(裵仁敬) 배맹관(裵孟寬) 배상곤(裵尙袞) 배 경(裵 褧)
   1856년(철종7)
   
   (음) 10월 11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34호(1983.07.20지정)
1856년(철종7)에 무열공 배현경(裵玄慶), 배정지(裵廷芝), 배인경(裵仁敬), 배맹관(裵孟寬), 배상곤(裵尙袞), 배경(裵褧) 등 여섯 분의 덕행과 학문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이들 중 배현경은 고려 태조 때의 무신이며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했다. 수림서원은 지방교육과 선현배향을 해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었으며 그 뒤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주벽-배현경(裵玄慶,?~936)
고려 전기의 무신. 경주 출신. 초명은 백옥삼(白玉衫, 白玉三). 군졸의 신분으로 담력이 있어 관위가 대광(大匡)에까지 이르렀다. 궁예 때부터 활약했던 인물이며, 특히 마군장군(馬軍將軍)으로 있을 때 신숭겸(申崇謙)·홍유(洪儒)·복지겸(卜智謙)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고려 건국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리하여 태조 즉위 후 1등 공신에 녹훈되었고, 태조를 도와 후삼국 통일에 많은 활약을 하였다. 918년(태조 1)에는 청주인(靑州人) 현율(玄律)을 순군낭중으로 임명하는 데 반대하여 병부낭중으로 삼게 한 적도 있다. 994년(성종 13) 태사(太師)로 추증되어 태조묘에 배향되었다. 그 뒤 마전(麻田 : 경기도 연천)의 숭의전(崇義殿), 평산(平山)의 태사사(太師祠), 나주의 초동사(草洞祠) 등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무열(武烈)이다.
 
2)배정지(裵廷芝, 1259~1322)
고려 후기의 무신. 본관은 대구(大邱). 초명은 공윤(公允), 자는 서한(瑞漢), 호는 금헌(琴軒). 민부전서(民部典書)를 지낸 영(瑩)의 아들이다. 10세에 금위(禁衛 : 대궐 경호 군대)에 들어가 도지(都知)가 되었다.
1270년(원종 11)에 강화에서 개경으로 환도할 때 나이 11세로 왕을 호종하여, 그 공으로 대정(隊正)이 되었다. 1291년(충렬왕 17)에 별장(別將)으로 만호(萬戶) 인후(印侯)를 따라 합단적(哈丹賊 : 원의 반란군)을 충청도 연기에서 크게 무찔렀는데, 이 때 화살이 턱뼈를 관통하는 중상에도 불구하고 분전하여 전과를 거둠으로써 중랑장(中郎將)에 특진하였다.
그 뒤 인후를 따라 원나라에 들어가 원제(元帝)로부터 용사라는 칭찬을 받고 백금을 받았다. 뒤에 충청·전라 양도 찰방이 되어 지방의 관기를 바로잡고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였다. 충선왕 때 호군(護軍)이 되었으며, 사농시(司農寺)와 유비창(有備倉)의 일을 관장하였다.
1318년(충숙왕 5)에 대호군으로서 탐라존무사(耽羅存撫使)가 되어, 목사와 왕자를 추방하고 반란을 일으킨 제주민(濟州民) 사용(士用)·김성(金成)·엄복(嚴卜) 등을 토벌하고, 돌아와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되었다. 1321년에 옥사가 일어나 귀양 갔다가 풀려나온 뒤에는 거문고와 바둑으로 여생을 보냈다. 그는 체구가 크고 무략(武略)에 뛰어났다. 나주의 초동사(草洞祠)에 제향되었다.
 
3)배인경(裵仁敬)
수림서원에 배향되었다.
4)배맹관(裵孟寬)
본관은 대구이고, 자는 원실(元實)이며, 호는 낙포(樂圃)이다. 할아버지는 익신(益臣)이다. 어린나이에 과거 공부를 그만 두었고, 김굉필을 본받아 ≪小學≫을 일상생활의 근거로 삼았고, 예를 강설하는 성혼의 견해를 보고 아들을 보내 사사하게 하였으며, 경전(經典)에 밝고 행실이 독실하여 덕릉 참봉에 천거되었다. 사후 고성의 수림서원에 배향되었다.
 
5)배상곤(裵尙袞)
본관은 대구(달성)이며, 할아버지는 희도(希道)이다. 자는 자장(子章)이고, 호는 성재(省齋)이다. 음직으로 출사하여 평구찰방(平邱察訪)을 역임하였다. 효종대에 세자익위(世子翊衛)에 제수되었으나 취임하지 않았다. 사후 수림서원에 배향되었다.
6)배경(裵褧)
본관은 대구이고, 중보(重宝)의 후손이다. 증조는 덕명(德明)이다. 초명은 상표(尙彪)이고, 호는 백류당(百柳堂)이며, 자는 병여(炳汝)이다. 정조대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성리학 서적을 깊이 공부하여 많은 사람들의 모범이 되었다. 사후 수림서원에 배향되었다.

건물은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왼편에 방 2칸, 가운데에 대청 2칸, 오른편에 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지붕은 옆에서 보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정문인 조제문은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의 솟을대문으로 가운데 1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강당 오른편에는 앞면 3칸·옆면 3칸 크기의 팔작지붕으로 된 산해정이 자리 잡고 있다.


참고-고성군지, 1995.
창원대학교 경남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