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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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월영서원(月影書院)
   경상남도 마산시 해운동 8-4
   최치원(崔致遠)
   1713년(숙종 39)
   
   불향
   월영대-경상남도기념물 제125호(1993.01.08지정)
1713년(숙종 39)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최치원(崔致遠)의 학문과 업적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9년(고종 6)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복원되지 못하였고, 월영당 또는 월영대(月影臺)라는 이름의 유적이 남아있다.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은데, 경상남도의 서원 자료 목록에는 건립연대가 1850년(철종 1)으로 되어 있으나,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는 1713년(숙종 39)으로 되어 있고, 마산시사에는 1846년(헌종 12)으로 기록되어 있다.

1)주벽-최치원(崔致遠, 857년~?)
신라 말기의 문장가, 학자이다. 본관은 경주, 자는 고운(孤雲) 혹은 해운(海雲)이다. 난랑비서문(鸞郎碑序文)이 ≪삼국사기≫를 통해 남아 있다. 우리말 고문(古文)으로 된 천부경(天符經) 한문 번역본을 남겼다는 주장이 있다.
857년 경주에서 출생했다. 868년(경문왕 8년) 당나라 유학을 떠나 12세의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한 지 7년 만에 과거에 급제, 선주 율수현위(宣州 溧水縣尉)가 되고 승무랑(承務郞), 시어사(侍御史), 내공봉(內供奉)에 올라 자금어대(紫金魚袋)를 하사받았다. 874년 빈공과에 급제하였다. 황소의 난 당시 이를 비난하는 토황소격문을 지었다.
884년 음력 10월 귀국했다. 885년 시독 겸 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 수병부시랑(守兵部侍郞) 지서서감(知瑞書監)이 되었으나 문란한 국정을 통탄하고 외직(外職)을 자청, 태산(太山 : 지금의 전북태인) 등지의 태수(太守)를 지냈다.
894년 진성여왕에게 시무(時務) 10여 조(條)를 상소해서 아찬이 되었다. 그러나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인하여 그후 관직을 내놓고 난세(亂世)를 비관, 각지를 유랑하다가 가야산 해인사에서 여생을 마쳤다.

척륭문(陟隆門)과 비각만 있다.

1)월영대-경상남도기념물 제125호(1993.01.08지정)
신라 말기 문창후(文昌侯) 해운(海雲) 최치원(崔致遠)선생이 대(臺)를 쌓고 해변을 소요(逍遙)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다.
조선초 초기 학자 이첨(李籤)의 시에
참고-마산시사, 1997.
창원대학교 경남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