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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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소노서원(小魯書院)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 313-2
   정호인(鄭好仁) 정호의(鄭好義)
   1835년(헌종 2)
   
   4월 5일, 10월 10일
   
1835년(헌종 2)에 건립한 것으로 임진왜란 때 공이 많은 충신 정호인(鄭好仁), 정호의(鄭好義) 형제의 우국충정의 얼을 길이 새기고자 향중유림의 공의로서 양위(兩位)를 배향하기 위해 서원을 짓고 매년 가을에 향사하고 있다. 1929년에 동래정씨 문중에 의해 복원되었다. 그 후 상의사(尙義祠)와 강당이 풍우에 퇴색되어 1985년 유림에서 사우를 중건하고 강당을 확장, 중건하였다.

1)정호인(鄭好仁, 1597~1655)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현(子見), 호는 양계(暘溪). 할아버지는 의병장 세아(世雅)이며, 아버지는 안번(安藩)이다. 장현광(張顯光)을 사사하였으며, 문장과 재행(才行)이 탁월하였다.
1618년(광해군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27년(인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 때에는 향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군을 도왔다. 1637년 이후 1654년까지 여러 고을의 수령으로 임명되었으나, 때로는 부임하지 않기도 하였다.
벼슬은 진주목사에 이르렀다. 임기를 마치고 돌아올 때에는 간단한 고리짝과 서책 몇 권이 행장의 전부였을 정도로 청빈하였으며, 만년에는 학문에만 몰두하였다. 대구의 청호서원(靑湖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양계문집≫이 있다.
 
2)정호의(鄭好義, 1602~1655)
조선 후기의 학자.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자방(子方), 호는 상화(常華)·명계(明溪). 세거지는 영천(永川). 아버지는 내금위장(內禁衛將) 수번(守藩)이고,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 생원 희익(希益)의 딸이며, 전삼성(全三省)의 문인이다.
약관에 벌써 경사(經史)·백가(百家)를 두루 섭렵하고 이어 저술에도 많은 힘을 기울여 문장 솜씨가 매우 뛰어났다. 초년에는 과거에도 여러 차례 응시해 보았으나, 중년 이후로는 출세와 인연을 끊고 마을 앞 시냇가에 ‘정정정(亭亭亭)’이라는 정자를 지어 꽃 가꾸기와 책 읽기, 그리고 시주(詩酒)·조어(釣漁)로써 낙천적인 생활을 하였다.
‘명계’라는 호도 이 때 지은 자호이다. 1636(인조 14) 병자호란 때는 형 호인(好仁)과 함께 의병을 모아 조령(鳥嶺)을 넘었다가 강화의 소식을 듣고 돌아왔으며, 한 때는 임고서원(臨皐書院)의 원장(院長)에 추대되어 매월 삭강(朔講 : 초하루에 실시하는 강의)으로써 한 지역의 문풍을 진작하고 풍속을 순화시켰다. 저서로는 ≪상화집 常華集≫ 2권이 있다.

동래 정씨 문중으로서 임진왜란 당시 공을 세운 충신 정호인(鄭好仁), 정호의(鄭好義) 형제의 우국충정의 얼을 길이 새기고자 현종 2년(1835)에 사림의 공의로써 사당을 짓고 매년 가을에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마을 입구에 정호인의 기적비가 세워져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은 1926년에 지은 것을 1985년에 중건한 것이다. 옛날에는 소산사(蘇山祠)라 했으나 뒤에 소노서원이라 개칭하였다.
건축물
소노서원은 상의사·정교당(政敎堂)·연경당(硏經堂)·강례실(講禮室)·동루(東樓)·삼문(三門)을 갖췄다.


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