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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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광산서원(光山書院)
   경상남도 창녕군 유어면 광산리 852
   양 훤(楊 晅)
   1795년(정조 19)
   
   
   광산서당-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69호(1983.08.06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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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훤(楊晅)을 향사하기 위해 1795(정조 19)에 창건하였다. 사액은 받지 못하였으며, 1868(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후 1899(광무 3)에 양훤의 8세손인 전환(典煥), 종환(淙欽), 9세손인 정규(定奎) 등이 중심이 되어 서원이 있던 근처 이강(梨岡) 아래 광산서당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서원의 유허지에 제단(祭壇)을 설치하였다.

주벽-양훤(楊晅, 1597-1650)

광해군(光海君) 때의 학자(學者). 본관(本貫) 밀성. () 어촌(漁村) 동계 정문간공의 문하(門下) 유학. 과거(科擧)로 성균관(成均館)에 뽑혀 벼슬길에 나갈 뜻이 있었으나 광해조 때 스승이 죄를 얻게 되자 낙향(落鄕) 낙동강(洛東江)가 시남리 이이목 경치가 수려한 절벽에 오여정을 짓고 유학자(儒學者)들과 교유(交遊)하고 음풍농월(吟風弄月)하며 지냈다. 인조 때 태학사를 지냈는데, 병자호란을 당하여 남한산성이 포위당하매, 성망도(成望道), 안동만(安東巒), 이운암(李雲菴) 등과 더불어 의병을 일으켰으나 새재에 이르러 임금의 수레가 도성을 벗어났다는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고 돌아와 세상을 떠날 때까지 두문불출 하였다. 미수 허목과 절친(切親)하게 지냈으며 돌아가시니 묘비문을 썼다. 사림(士林)에서 광산서원(유어면 광산리)을 세우고 배향(配享)하였다.

강당인 광산서당은 서원 건물로는 흔하지 않은 자형 집이다. 정명은 5칸인데, 동쪽을 자로 잇대어 측면을 2칸으로 분리하였다. “숭정기원무진후오회을해오월삼십일유시수주이월이십일유시상량(崇禎紀元戊辰後五回乙亥五月三十日酉時竪柱 二月二十日酉時上梁)”이란 묵서(墨書)가 있으며 1935년에 세운 건물임을 알 수 있다.
책판
이 서당에는 고려 말에 중국에서 귀화한 양기(楊起)와 그의 12세손인 졸헌 양허국(拙軒 楊許國, 1576~1660), 허국의 아들 양훤, 그리고 그의 아들 무금당 양도남(無禁堂, 楊道南, 1624~1701)등의 글을 모아 만든 <청주세록> 목판 135판이 보관되어 있다.
참고-창원대학교 경남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