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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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신암서원(新巖書院)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 1170
   안 관(安 灌)
   1780년(정조 4)
   
   3월, 9월 중정(中丁)
   근재집책판(謹齋集冊板)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74호(1979.12.29지정)
신암서원은 함안군 가야읍 신음리에 있었던 서원이다. 1780년(정조 4)에 안관(安灌)을 향사하기 위하여 사(祠)와 서원강당이 건립되고 1784년(정조 8)에 승원(昇院)하였다. 1823년(순조 23)에 강당을 이건하고 1850년(철종 1)에 두 번째 중건을 행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한동안 복원하지 못하였으나, 1990년 3월 신암서원복원추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그리하여 향내 유림의 지원과 후손들의 노력으로 1992년 10월에 착공하여 1993년 10월 23일에 준공하였다.

1)주벽-안관(安灌, 1491~1552)
자는 관지(灌之), 호는 취우정(聚友亭), 본관은 순흥(順興), 아버지는 안존도(安尊道)이며, 함안(咸安)에 거주하였다. 저자는 중종 조에 효행과 학문으로써 돈령참봉(敦寧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양했다. 1517년에 부친상을 당하여 가례에 따라 여묘살이를 하였고, 1519년에 모친상을 당해서도 전상 때와 같았다. 14세 때 갑자사화를 보고 사문(斯文)의 세상에 회의를 느끼고, 또 을묘사화를 보고 세상의 일에 문을 닫고 고서 연구에 전심하다가, 1523년에 조광조의 제자인 박덕손(朴德孫)과 함께 여항산(艅航山)에 은거하여 산수를 읊으며 세간의 일은 일절 생각지 않았다. 1537년 중종이 공의 행의(行誼)를 높이 사서, 사직(司直)에 제수함에 공은 훈구세신으로서 의리상 사절할 수 없어서 잠시 명에 응했다가 이내 사퇴하였다

종전의 서원은 신암재(新巖齋)로 편액을 바꾸었다. 5칸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 중앙의 2칸은 마루이고 동편 2칸과 서편 1칸은 방이다. 신암재 좌측에 신축한 신암서원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 목조와가 팔작지붕이다. 경내에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단층 목조와가로 맞배지붕양식인 사우 및 정면 3칸의 단층 목조와가 맞배지붕인 별묘를 비롯하여 동재·서재·장판각·외삼문 등이 있다.

1)근재집책판(謹齋集冊板)-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74호(1979.12.29지정)
이 책판은 1740년(영조 16)에 고려후기 문신이자
참고-창원대학교 경남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