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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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옥전서원(玉田書院)
   경상남도 합천군 쌍책면 성산리 474
   정배걸(鄭倍傑) 정 문(鄭 文)
   1799년(정조 23)
   
   3월 1일, 10월 1일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01호(1993.12.27지정)
이 서원은 초계 정씨(草溪 鄭氏) 시조 정배걸(鄭倍傑)을 배향하고 있다. 정배걸은 고려 전기 지공거 곽원(知貢擧 郭元)의 문하에서 장원급제한 인물이다. 이후 중앙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그가 연 사숙(私塾)은 홍문공도(弘文公徒) 혹은 웅천도(熊川徒)라 불리었는데 고려시대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 중 하나이다. 사후 문하시중에 추증되었다.
서원 건물은 초계 유림의 발의로 1799년(정조 23)에 처음 세워졌으며, 이후 1861년과 1981년의 중수를 거쳐 지금에 전하고 있다. 대원군 집권 시에는 훼철령이 내리기 직전에 동래부사 우전 현덕공이 옥산사 사판을 내리고 자신이 찬한 정간공 신도비문을 목형으로 세워 비각으로 둔갑케 하여 훼철을 모면케 되었다. 1980년 경신 유림봉사로 복원됨에 따라 옥전서원으로 다시 개칭하게 되었다.

1)정배걸(鄭倍傑)
정배걸은 초계 정씨의 시조이며 고려전기 지공거 곽원(知貢擧 郭元)의 문하에서 장원급제한 인물이다. 이후 중앙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그가 연 사숙(私塾)은 홍문공도(弘文公徒) 혹은 웅천도(熊川徒)라 불리었는데 고려시대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 중 하나이다. 그가 죽은 뒤 문종은 1080년에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조서를 내리고,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개부의동삼사수태위문하시중 상주국광유후(弘文廣學推誠贊化功臣開府儀同三司守太尉門下侍中 上柱國光儒侯)로 추증하였다.
 
2)정문(鄭文, ?~1106)
고려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의덕(懿德). 예부상서·중추원사(中樞院使) 배걸(倍傑)의 아들이다. 유복자로 태어나 문과에 급제한 뒤 문종 때 비서랑(秘書郞)이 되었고, 선종이 즉위하면서 직한림(直翰林) 겸 사문조교(四門助敎)에 발탁되었다.
이어 우습유(右拾遺)가 되자, 대간에서 그의 외조가 처인부곡(處仁部曲) 출신이므로 간관이 됨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므로 전중내급사 지제고(殿中內給使知制誥)로 고쳐 제수되었다가 지개성부사(知開城府事)를 거쳐 형부원외랑(刑部員外郎)이 되었다.
1105년(숙종 10)에 형부상서 정당문학 겸 태자빈객(刑部尙書政堂文學兼太子賓客)이 되고 검교사공 예부상서(檢校司空禮部尙書)가 더해졌다. 청렴·공정하여 형조를 10여년 맡았으나 일을 잘 처리하였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받은 금백(金帛)을 그의 종자에게 나누어주고 그 나머지로는 모두 서적을 사가지고 왔다 한다.
일찍이 서경에 호종하여 기자(箕子)의 사당을 세우도록 청하기도 하였다. 죽은 뒤 특진 좌복야 참지정사(特進左僕射參知政事)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서원의 구조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이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담장으로 둘러쳐져 있다. 서원의 왼쪽에는 고직사로 보이는 별도의 건물이 1동 있다.
서원의 강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가운데 2칸은 마루로 구성하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두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양 옆 지붕 아래에는 바람을 막기 위한 풍판을 달았다. 묘우인 광덕사(光德祠)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맞배지붕이다.


참고-창원대학교 경남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