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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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용강서원(龍岡書院)
   경상남도 합천군 용주면 고품리
   김두남(金斗南) 김도남(金道南)
   1664년(현종 5)
   
   불향
   
1664년(현종 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두남(金斗南)과 김도남(金道南)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당시 용강서원은 정려의 서쪽에 창건하였고 매학정을 용강서원과 정려의 사이에 건립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9년(고종 6)에 훼철되었다. 그 후 후손들의 발의에 의해 정사로 중건하고자 하여 매학정 터의 북쪽에 중건하여 용강정사(龍岡精舍)라 하였다.

1)주벽-김두남(金斗南, 1567~1615)
김두남은 아버지 수일(守一)과 어머니 강양 이씨(江陽 李氏)사이에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남달리 영특하였으며 나이 6세에 부친에게 글을 배워 15~16세 때 이미 문사(文詞)에 통달하여 재명(才名)이 이웃 고을까지 떨쳤으나 과업에는 뜻이 없어 학문에만 전념하고 부모봉양과 친족 간의 돈목(敦睖)에 노력하면서 임천(林泉)에 묻혀 있었다.
김두남이 26세 되는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을 맞아 경상우도 일대에서는 조식의 문인들과 정인홍의 문하생들이 궐기하여 대대적인 창의토벌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합천을 중심으로 한 초계, 성주, 고령 일대에서는 3,000여명의 대병력으로 낙동강 연안을 제압하여 적의 보급로를 차단하는 동시 호남침공을 차단하고 적의 거점인 성주성을 수복하는 등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전란이 끝난 후 林泉에 묻혀 학문을 전심연구하면서 과업에는 뜻을 두지 않고 부모봉양과 친족돈목에 극진하였다.
사후에 효행으로 인조 12년(1634)에 증선무랑 종부시 주부(贈宣武郞 宗簿寺 注簿)에 추서(追敍)되고 효종 2년(1650)에 사정려(賜旌閭) 되었다.
2)김도남(金道南)
호는 구봉(九峰)이다. 직제학 전(巓)의 증손자이다. 효성이 뛰어나 부모상을 당해서 6년을 여묘(廬墓)에서 살았고 학행이 세상에 드러났다. 선조 때 조정에서 세금을 면제해 주고 벼슬이 장사랑(將仕郞)에 이르렀다.

용강정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양식이다. 용강정사記의 기문은 10세손인 영선(永善)이 지었다.


 참고-창원대학교 경남학연구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