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의병장 허응길( 1553~1628)
자는 길원(吉元)이며 선조(宣祖) 17년(1584) 갑신(甲申) 별시(別試) 병과(丙科) 89위로 무과에 급제하였다. 아버지는 허세훈(許世勳)으로 본관은 하양(河陽)이며 급제당시에는 밀양(密陽)에 거주하고 있었다.
문경공(文敬公:허조)의 9세손이다. 도학이 탁월하고 문무를 겸전함으로써 일찍이 현풍현감을 제수받고 부임하여 백성을 덕으로 다스리니 향방(鄕邦) 모두가 치적을 찬양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분심을 억제치 못하여 대의를 품고 창의(倡義), 모병(募兵)하여 화왕산 전투에 곽망우당장군(郭忘憂堂將軍)과 합세하여 다대한 전공을 수립하였기로 이상국(李相國), 안눌(安訥) 양공께서 하어화왕산두견(下於火旺山頭見)하니 수식동남한적공(誰識東南 賊功)이란 시를 지어 공적을 치하하였다. 그 후 대구진관(大丘鎭管) 병마절제사(兵馬節制使)로 재임시에도 공적이 지대하였으므로, 평란 후 류서애(柳西涯)선생께서 저술한 임란공신록권(壬亂功臣錄卷)에 이등공신으로 등재되었고 하양팔의사비(河陽八義士碑)에도 소재(昭載)되었다.
선생의 후손들의 집단 세거지인 경산시 하양읍 대곡리 백곡산 기슭에 서기 1938년에 선생을 위한 재사(齋舍)를 창건하여 재호(齋號)를 선생의 호를 따서 희성당(希聖堂)이라 하고 지방 유림들이 모여 선생의 추모계를 모아 해마다 한 차례 계모임을 해왔었다. 서기 1978년에 향빈도객(鄕賓道客)의 공의(公議)로서 선생의 위대한 공적을 찬양하기 위하여, 백곡서원(柏谷書院)으로 개판하고 해마다 춘향(春享)으로 지방 유림들이 봉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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