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0-25 10:25
서원 바로 알기② 충남의 대표적 賜額書員인 遯巖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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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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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의 대표적 賜額書員인 遯巖書院 사액서원은 조선시대에 왕으로부터 서원명의 현판과 노비·서적 등을 받은 서원을 일컫는다. 서원의 건립은 본래 향촌유림들에 의하여 사적으로 이루어졌으나 조정에서 특별히 서원의 명칭을 부여한 현판과 그에 따른 서적·노비 등을 내린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특전을 부여받은 국가공인의 서원을 사액서원이라 하였다. 최초의 사액서원은 경북영주에 있는 소수서원이다. 주세붕에 의해서 세워진 백운동서원에 1550년(명종 5) 당시 풍기군수이던 퇴계 이황(李滉)의 요청으로, 명종이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는 어필(御筆) 현판과 서적을 하사하고 노비를 부여하면서 사액서원의 효시가 되었다. 사액을 받는 경우 조정으로부터 예관(禮官)이 파견되어 배향인물에 대하여 치제(致祭)하는 특전 및 기타 법제적 특전이 있었다. 이번달부터 운영되는 서원순례 첫 번째 목적지인 돈암서원도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사액서원 중 하나이다. 돈암서원은 충청남도 논산시(論山市) 연산면(連山面) 임리(林里)에 있다. 1634년(인조 12)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됐다. 사계의 부친이 설립한 경회당(慶會堂)과 사계가 창건한 양성당(養性堂)을 중심으로 제향이 이루어 지다가 후대에 와서 서원이 된 것이다. 1660년(현종 1)에 돈암(遯巖)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입구에 하마비와 홍살문이 있고, 이를 지나면 최근에 건립된 서원비가 세워져 있다. 다음 차례로 외삼문, 응도당, 2기의 서원비, 양성당, 내삼문, 사우가 배치되어 있다. 외삼문은 솟을대문으로 좌·우문은 회사벽으로 처리하였으며 가운데 문만 시설하였다. 외삼문의 어칸 창방 외에는‘입덕문’이란 현액이 걸려 있다. 응도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누마루식 건물로 맞배지붕의 주심포 계통의 건물이다. 강학당인 양성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도리식 팔작지붕의 건물로 현재는 동·서 양재의 두 기능을 함께 하고 있다. 돈암서원이란 현액이 걸려있는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익공 양식에 주심포 양식이 가미된 건물이다. 응도당 앞의 돈암서원비는 현종10년(1669)에 세워진 것으로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를 썼으며 김만기가 새긴 것이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에도 훼철되지 않을 만큼 위세를 자랑했다. 현재 서원 건물 중 사우와 응도당이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8호로 지정되어 있다. 평지에 위치한 서원의 전형적인 공간구성을 보여주는 서원은 현재 사적 3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서원이 위치한 지대가 낮아 홍수 때에는 물이 뜰까지 넘쳐 들어오므로, 고종 때 현재의 자리로 옮겨지었다. 최근에는 홍살문을 우측으로 조금 옮겨 세웠고, 산앙루를 복원했다. 사계 김장생 및 신독재 김집, 동춘당 송준길, 우암 송시열 등 4위를 모시고 있으며 유일하게 부자(사계 김장생, 신독재 김집)가 서원에 배향된 곳은 바로 이 곳뿐이다. <사계전서(沙溪全書)> <신독재전서(愼獨齋全書)> <상례비요> 판각 2100판과 옥등잔(玉燈盞), 사액연(賜額硯) 등이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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