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0-25 10:26
서원 바로 알기⑤ - 경기도의 대표적 서원인 紫雲書院과 深谷書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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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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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과 인접한 경기도의 서원들 중 대표적인 곳이 자운과 심곡서원이다. 자운서원은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 선생을 봉안한 서원으로 광해군 7년(1615)에 창건되어 효종원년(1650)에 사액되었다. 숙종 39년(1713)에 선생의 후학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과 남계(南溪) 박세채(朴世采, 1632-1695) 두 분을 추향하였다. 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으나 1970년대에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복원된 현재의 자운서원은 높은 대지위에 사당을 앉히고 사괴석 담장을 둘러서 삼문 앞에 계단을 이용해 오르도록 설계되었다. 사당의 건물구조는 익공계 형식으로 처리되었고 지붕은 합각이다. 내부에는 율곡이이의 영정을 중심으로 좌우에 사계 김장생과 남계 박세채의 위패를 모셨으며 매년 음력 8월 중정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삼문은 양측면을 박공으로 마감한 솟을대문 모양이다. 서원 내에 율곡 선생과 신사임당의 유품을 전시한 기념관(입장료 무료)과 율곡 이이 선생의 묘소가 자리 잡고 있다. 율곡의 묘소는 서원 서편에 신사임당의 묘와 위아래로 위치하여 다른 친척들 묘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데 부모보다 윗자리에 모셔져있는 이채로운 형태를 띠고 있다. 무덤 앞 쪽에 상석이 있고, 그 우측에 묘비가 있으며, 좌우로 망주석이 서 있고 묘단 아래에 문인석이 있다. 서원 내에는 이밖에 묘소, 묘정비, 삼문, 문성문, 율곡기념관, 율곡 교육연수원, 잔디 광장, 연못, 약수터, 재실등이 있다. 매년 10월 초순, 이곳에서 율곡선생 추향제례를 기점으로 파주시 축제행사인 율곡문화제가 개최된다. 율곡 이이는 13세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23세부터 29세까지 9번의 과거에서 9번 장원급제를 하기까지 어머님 문상기간과 금강산 수도의 4년을 제외하고는 이곳에서 학문을 닦았고 벼슬길을 마친 말년에도 이곳에 돌아와 49세로 생을 마치기까지 거주하였다. 심곡서원은 1650년(효종 1) 정암(靜庵) 조광조(趙光祖)의 학덕과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 유림의 공론에 의거, 설립되고 위패가 봉안됐다. 1972년 5월4일 경기도유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정암 조광조 선생의 무덤이 있는 용인에서는 일찍부터 서원을 세우기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재력이 넉넉하지 못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고, 모현면(慕賢面)의 정몽주(鄭夢周)를 배향한 충렬서원(忠烈書院)에 입향하였다가 이 서원이 설립되면서 위패를 옮겨왔으며 양팽손(梁彭孫)을 추가 배향하였다. 같은해 ‘심곡’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 건물은 사당·일소당(日昭堂)·재실·장판각·내삼문·외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지붕의 좌우에 방풍판을 단 겹처마이다. 일소당은 강당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합각지붕에 겹처마이며, 목판벽으로 각 칸마다 판자문비(板子門扉)를 달아 사면을 다 개방할 수 있다.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과 강론에 사용된다. 재실은 정면 4칸, 측면 반 칸의 합각 홑처마이며, 원생이 기거·면학하던 곳이다. 내삼문은 박공지붕집의 3칸 솟을대문이며, 장판각은 맞배지붕에 홑처마로 67종 486책을 소장하였으나 1985년 도난당해 현재 <정암집(靜庵集)> <조선사(朝鮮史)> 등만 전해진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47개 서원의 하나로서 해마다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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