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1. 홈
  2. 로그인
  3. 회원가입

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작성일 : 12-10-25 10:27
서원 바로 알기⑥ - 용인의 深谷書院과 나주의 景賢書院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462  


靜庵 趙光祖를 모시고 있는 書院들
- 용인의 深谷書院과 나주의 景賢書院 -
정암 조광조는 역사가 아니라 전설이다. 세상이 어지러울 때 그는 양반을 넘어 일반 백성들 속에서 다시 살아났고, 40세도 되기 전에 꺾여버린 그의 꿈은 문학으로 드라마로 현재도 부활하고 있다. 젊은 유교의 나라를 꿈꾸었던 그의 실천은 현실화 되지 못하고 좌절됐기에 더욱 빛났다. 이번 호에서는 정암 선생을 모신 서원들에 대해 알아보자.
경기도 용인 아파촌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심곡서원(深谷書院)은 선생의 묘소 근처에 자리 잡은 서원이다. 일찍부터 서원을 세우기 위한 논의가 있었으나, 재력이 부족하여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를 제향하는 충렬서원에 입향하였다가,조선 선조 38년(1605) 무렵 위패를 옮겨오게 되었다. 설립과 동시에 <심곡>이라는 사액을 받았으며, 양팽손(梁彭孫)을 추가 배향 하였다. 대원군의 서원철폐 당시에도 존속한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심곡서원은 광교산과 형제산에서 이어지는 구릉을 배경으로 경사지에 자리 잡고 외삼문·내삼문·사당을 잇는 중심축을 중심으로 배치된 전형적인 구조다. 건축물들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정면 3칸·측면 2칸의 맞배지붕인 사우는 지붕의 좌우에 방풍판(防風板)을 단 겹처마로 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권위 건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기법으로 용마루에 흰 회로 띠를 두른 양성(兩城)을 하였다. 앞면에 트인 퇴칸이 있으며, 옆면과 뒷면에는 방화벽을 설치하였다.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담장은 다듬지 않은 돌로 쌓았으며, 내삼문은 박공지붕집의 3칸 솟을대문 형식으로 되어 있다.
강당인 일조당은 정면 3칸·측면 3칸의 합각(合閣)지붕에 겹처마로 되어 있으며, 목판벽(木板壁)으로 각 칸마다 판자문비(板子門扉)를 달아 사면을 모두 열 수 있게 하였다. 원생이 기거하며 공부하던 곳인 재실은 정면 4칸·측면 반칸의 합각 홑처마로 되어 있으며, 장판각은 맞배지붕에 홑처마로 되어 있다.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 및 유림의 회합과 학문의 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강당 안쪽 벽에는 숙종어제어필의 현판을 비롯하여 서원의 규약(規約)·중수기(重修記)·제영(題詠) 등이 걸려 있다.
심곡서원에는 재실(齋室)이 없다. 사당중심으로 건물이 배치되었고, 대신 주변에 장서각 등이 세워져 있다. 맞배지붕에 홑처마로 된 장서각에는 67종 486책이 소장되어 있었으나, 1985년에 도난당하여 현재는 <정암집> 등 몇 권만 남아 있다. 원내에는 수령 5백년의 느티나무가 있어 경기도 보호수로 지정 되었다.
현재도 충효교실을 열어 일반 시민과 인근 초·중·고교생을 지도하고 서예와 한문을 가르치며 정암의 깊은 뜻과 정신을 기리고 있다.
조선시대 전라남도 나주에서 가장 큰 서원으로 꼽혔던 경현서원(景賢書院)은 전라남도 나주시 노안면 영평리에 자리한 서원으로, 조선시대 나주에서 가장 규모가 큰 서원이었으며 정암 조광조와 더불어 조선유학의 정통을 대변하는 많은 인물들을 배향하는 곳이다.
김굉필(金宏弼)을 모시는 서원 건립되었으나, 1589년(선조 22)에 동방오현(東方五賢)으로 숭앙받던 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 등 4위(位)를 추가 배향했다. 나주 목사로 재임하던 학봉 김성일(鶴峰 金誠一)이 적극 지원하여 1584년(선조 17)완공하였다.
김성일의 후임목사로 부임했던 임윤신(任允臣)목사 때에 금양서원은 오현사(五賢祠)사로 명칭이 바뀌면서 서원의 원장으로 김천일·정개청·안방준 등 호남의 기라성 같은 명유(名儒)들이 임석해 호남의 대표적 서원으로 추숭된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1608년(광해군 원년)에 중건을 하고 이듬해인 1609년에 사액을 청하는 상소를 올려 지금의 명칭인 경현서원(景賢書院)으로 액호를 하사받는다.
1693년(숙종 19)에는 기대승과 김성일을 추배하여 모두 7위(位)를 제향하는 서원이 된다. 1868년 내려진 서원철페령으로 훼철되었으나, 백여 년의 세월이 지나 지금의 자리인 노안 영안마을로 1977년에 이전 복원됐다.
옛 명성에 비해 지금의 모습은 다소 초라하다. 서원 내 사당인 경현사(景賢祠)에는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기대승·김성일의 위패가 좌에서 우로 모셔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