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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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25 10:30
서원 바로 알기⑬-李彦迪 선생을 모신 서원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681  


영남사림 대표하는 兩大서원중 하나인 玉山서원

옥산서원은 조선 중종 때 우리나라 18현 중 한 분인 회재(晦齋) 이언적(李彦迪) 선생을 모시고 있는 서원이다. 도산서원과 함께 영남의 2대 서원으로 꼽힌다. 회재가 세상을 뜬 지 20년이 지난 후인 1573년(선조 6)으로 그가 당시 경주부윤이었던 이제민(李齊閔)은 안강 고을의 선과 더불어 선생의 뜻을 기리고자 독락당(獨樂堂) 아래에 사당을 세웠으며, 사액(賜額)을 요청하여 1574년에 ‘옥산’이라는 편액과 서책을 하사받았다.
화개산, 자옥산, 무학산, 도덕산 등 4개의 명산이 둘러싸고 있는 명당에 자리해 서향을 하고 있다. 동북남쪽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증심대, 탁영대, 관어대, 영귀대, 영심대 등 5대(五臺)로 불리는 반석이 계곡을 꾸미고 있어서 예로부터 4산5대의 경승지로 꼽혀왔다.
양식은 전면에 강학처(講學處)를 두고 후면에 사당을 배치한 전형적인 전학후묘(前學後廟) 건축구조로 되어 있는데, 중심축을 따라서 문루·강당·사당이 일직선상의 축을 이루면서 배치의 기본을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진입공간·강학공간·제향공간·지원공간의 4공간으로 구성되어 있어 소박하면서도 간결한 모습을 띠고 있다.
서향의 정문인 역락문(亦樂門)을 들어서면 무변루(無邊樓)가 나타나고, 이어서 계단을 오르면 마당이 전개된다. 무변루는 정면 7칸, 측면 2칸, 2층 규모의 큰 누각건물로서 가운데 3칸은 아래위 모두 틔워 출입문과 대청으로 활용하고, 그 양쪽 1칸을 벽체로 막아 아래로 아궁이와 굴뚝을 설치해 온돌방을 만들었다. 그 양 끝은 누각이다. 편액이 2층 대청 안쪽 벽 위에 걸려있는 것이 특징이다.
정면에는 구인당(求仁堂)이 있고 좌우에는 원생들의 기숙사격인 민구재(敏求齋), 암수재(闇修齋)의 동·서재실이 있다. 구인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3칸을 틔워 마루를 깔았고 양 옆의 한 칸은 온돌방을 놓았으며 전면에 창이나 문이 없고 벽으로 막혀 있다. 가운데 두 기둥 사이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추사의 글씨이다.
민구재(敏求齋), 암수재(闇修齋)는 정면 5칸, 측면 1칸의 좁고 긴 맞배지붕 건물들로 서로 대칭을 이루고 있다. 동쪽 끝 한 칸, 서쪽에 두 번째 칸에 마루를 깐 공간처리를 했다. 강당을 옆으로 돌아서서 뒤로 가면 이언적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체인묘(體仁廟)라는 사당이 나타난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체인묘 주변에는 장판각(藏板閣)·전사청(典祀廳)·신도비(神道碑) 등이 있다. 신도비각은 기대승(奇大升)이 지은 것이다.
옥산서원은 현존하는 서원 문고 가운데 많은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현재 어서걱과 독락당에 나누어 보관하고 있다. 보관된 책 중에서 1513년에 간행된 <정덕계유사마방목(正德癸酉司馬榜目)>은 현재까지 발견된 활자본으로는 가장 오래된 책으로 보물 제5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밖에 <삼국사기> <해동명적> <이언적수필고본일괄> 등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16세기 영남사림파의 선구가 되는 회재 이언적을 모신 만큼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까지 영남사림의 중심지 역할을 하면서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이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훼철되지 않았다. 일제 말기에 화재로 옛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곧 복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