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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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10-25 10:38
서원 바로 알기(16)-강원도 서원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753  


영월 彰節書院, 강릉 松潭書院

강원도에 있는 서원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지어졌을 당시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서원은 영월에 있는 창절서원이다. 단종(재위 1452∼1455)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세조(재위 1455∼1468)에 의해 죽임을 당한 사육신 박팽년(朴彭年)ㆍ성삼문(成三問)ㆍ이개(李塏)ㆍ유성원(柳誠源)ㆍ하위지(河緯地)ㆍ유응부(兪應孚)와 김시습(金時習)ㆍ남효온(南孝溫)ㆍ박심문(朴審問)ㆍ엄흥도(嚴興道) 등 10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7호로 지정됐다.
창절서원은 장릉 경내에 건립하였던 육신사(六臣祠)에서 비롯되었다. 1685년(숙종11) 강원도관찰사 홍만종(洪萬鍾)과 영월군수 조이한(趙爾翰)이 3칸의 사우를 세웠으며, 앞면 5칸ㆍ옆면 2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경내에 있는 문루인 배학루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로 화려한 팔작지붕이다.
1층은 앞면 3칸에 모두 문을 설치하였고, 2층은 누각으로 되어있다. 강원도에 있는 사당이나 서원 중 대문이 문루인 곳은 이곳뿐이다. 1698년 노산군에 대한 복위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부터 왕릉 곁에 신하들의 사당을 둘 수 있느냐가 논란이 되면서 1705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이후 1709년 영월 유생의 소청으로 ‘육신사(六臣祠)’를 ‘창절사(彰節祠)’로 고쳐 사액(賜額)을 내렸다.
당초에는 사육신만이 배향되었으나 창절사로 사액되면서 이후로 김시습과 남효온ㆍ박심문ㆍ엄흥도가 추가로 배향되었으며, 창절서원(彰節書院)으로 개칭되었다. 내삼문에는 예전의 ‘육신사(六臣祠)’ 현판이 걸려 있고, ‘창절사’ 현판은 1709년 윤사국(尹師國)이 쓴 것이다. 이곳의 건물은 1788년(정조12)의 대대적인 보수를 하였으며 그뒤 여러 차례 중수와 보수를 거쳤다.
강릉의 송담서원도 강원도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44인 송담서원은  조선시대 강원감사 윤안성, 강릉부사 강유와 김몽호, 이상필등이 주동이되어 인조2년(1624) 구정면 학산리에 석천서원으로 처음 건립하였다. 효종3년(1652)에 강원감사 김익회, 강릉부사 이만영 등이 협의하여 현재위치로 건립하였고 현종1년(1660)에 송담서원으로 사액되고 묘정비는 1726년에 만들어졌다. 순조4년(1804) 큰 산불로 대부분의 서원건물이 소실되었고 그 뒤 일부 증건 하였으나 고종8년(1871)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고종42년(1905)에 지방 유림들의 모금으로 사당을 재건하고 매년 2월 중정일에 제례를 올리며 현재에 이르렀다.
‘ㄷ’자 담장안에 건축물이 배치되어 있으며 건축물은 솟을대문과 좌우 협문을 통과하여 1차 접근 공간인 앞마당은 자연석을 깔아놓았다. 2차 공간의 입구는 화강석으로 다듬어 계단을 만들어 높은 위치를 유지시켜 위계성을 주고 있으며 맞배 지붕의 대문간을 통과하여 본 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맞배건물이 있고 좌우로 향교의 동서재와 같이 대청형으로 같은 건물이 배치되어 있다. 바닥통로는 ‘+’자 형태로 자연석을 깔아 놓았으며 중앙의 송담사 건물 기단이 다른 건물보다 높게 위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