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12-10-25 10:41
서원 바로알기(22)- 復院이 추진 중인 서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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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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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道峰書院, 구미 月巖書院, 거제 盤谷書院 현재 전국 곳곳에서 지역의 전통문화의 산실로활용하기 위해 훼철되어 소수의 건물이나 자취만이 남아있는 서원들의 복원이 진행되고 있다. 이번 호에는 완공을 눈앞에 두었거나 한창 복원이 추진 중인 3곳의 서원에 대해 알아보자. 서울에 있는 대표적인 서원인 도봉서원은 올해 들어 도봉구청의 주도로 본격적으로 복원이 추진되고 있다. 도봉서원은 1573년(선조 6) 조광조(趙光祖)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창건과 동시에 사액을 받았고, 1696년 송시열(宋時烈)을 추가 배향하였다. 1775년(영조 51) 어필사액(御筆賜額)을 다시 받았다. 사당은 북쪽에, 오른편과 왼편에는 동재(東齋)와 서재(西齋)가 있었고, 서원은 사당의 남쪽에 있었다. 최근까지도 조선 전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정암 조광조와 우암 송시열의 위패가 모셔진 사액서원임에도 보존·관리가 안돼 방치되고 있었다. 백사 이항복 등 저명한 시인·묵객들의 시문이 남아 있으며 서원 터 앞 계곡에 사당의 기단과 옛 사료상의 도봉서원 유적으로 소개된 각석군이 원형대로 남아 있어 역사적 보존가치 또한 크다. 송시열이 ‘도봉동문(道峯洞門)’이라고 글씨를 새긴 바위를 비롯해 당대 명필들이 글씨와 시문을 새긴 바위 11기도 흩어져 있다. 현재는 1971년 복원된 사우(祀宇·제사 지내는 곳)만 남아 있다. 경상남도 구미의 월암서원도 복원이 한창이다. 지난 11월29일에는 김태환 국회의원, 김관용 경북도지사, 남유진 구미시장, 문중 대표 등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원 복원 및 삼인사(三仁祠) 향사(享祠)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지난 2001년 복원을 위해 고유제를 지내고 상의사, 흥사청, 동제, 서제 등의 공사를 진행해왔다. 명종 때의 문신 김주(金澍), 사육신의 한 사람인 하위지(河緯地), 생육신의 한 사람인 이맹전(李孟專) 등의 위패를 모셨으나. 1868년(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없어지고 지금은 월암정만 남아 있다. 농암(籠岩) 김주 선생은 고려 공양왕 때 하절사(賀節使)로 명나라에 가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압록강에 이르러 조선 건국 소식을 듣고 통곡하면서 부인 유 씨에서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니, 내가 강을 건너면 몸둘 곳이 없노라”며 서신을 보낸 뒤 명나라로 망명했다. 단계(丹溪) 하위지 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성삼문 등과 단종 복위를 꾀하다가 실패, 거열형(車裂刑)에 처해졌다. 경은(耕隱) 이맹전 선생은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수양대군이 계유정난(癸酉靖難)을 일으키자 관직에서 물러나 선산(善山)에 내려가 김숙자(金淑滋) 등과 학문을 교유하며 일생을 마쳤다. 경남거제의 반곡서원은 복원이 코앞이다. 23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돼 건립되는 반곡서원은 2012년 6월 완공 예정이다. 반곡서원은 전형적인 서원 배치형식인 전학후묘(前學後廟) 형식으로 강당→내삼문→우암사로 이어지는 중심축을 설정하고 우암사 측면에 동록당, 강당 전면에는 동·서재를 복원한다. 또 비각과 외삼문, 내삼문, 협문 등도 복원할 계획이다. 반곡서원은 1679년(숙종5년) 우암 송시열 선생이 거제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하면서 후진을 양성한 것을 계기로 1704년(숙종30년) 거제 유림에 의해 창건됐다. 이어 1868년(고종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폐지됐다가 광무 10년(1906년) 유림들의 정성으로 확장 재건돼 동록(東麓) 정혼성 선생 위패를 봉안한 별사인 동록당(東麓堂)을 세웠다. 1974년에는 우암사를 중건한 뒤 기존의 강당을 보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송시열 선생을 주향(主享)으로 위패를 봉안하고 죽천 김지규, 몽아 김창집, 단암 민진원, 삼호 이중협, 계산 김수근 선생 등을 배향(配享)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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