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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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작성일 : 13-01-25 16:51
서원과 사찰. 세계로 뻗어나갈 한국 전통문화의 결정체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4,174  


서원과 사찰. 세계로 뻗어나갈 한국 전통문화의 결정체
지난 414일 국가브랜드 위원회 대회의실에서는 문화재청, 9개 서원 대표자, 해당 지방자치단체,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관계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한국 서원세계문화유산등재추진 주비위원회(위원장 이배용)의 발족식을 가졌습니다. 이것은 국가브랜드위원회(위원장 이배용)가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4차 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을 포함한 `신뢰받고 품격있는 대한민국 구축' 대책을 보고한 후 이뤄진 일인데요.
이배용 위원장은 보고하는 자리에서 우리나라가 경제 대국에서 문화 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우리 문화와 역사에 대한 국민의 공감과 지지가 중요하다"면서 "고유문화 자산을 세계인이 공감하는 문화 콘텐츠로 재해석해 글로벌 브랜드화를 하는데 역점을 두겠다" 고 밝혔습니다. 구체적인 활동 방안으로 전통 사찰의 정신적 가치에 대해 국내외 관광객들이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문화콘텐츠화하고 관광 상품으로의 연계 방안을 찾겠다고 했습니다.
<한국 서원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주비위원회가 발족되었다.>
(사진 : 문화저널21)
또한 그 자리에서 이배용 위원장은불교와 유교의 문화적 자산인 사찰과 서원은 세계에 한국의 이미지를 알리는데 매우 소중한 문화재라며향후 사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위한 사업도 이어서 추진 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는데요. 조선시대의 서원의 유네스코 등재 활동이 바로 그 첫 걸음이 되었습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대해서는 많은 분들이 알고 있을 겁니다. 이전에 우리나라는 10곳의 문화유산을 등재시킨 적이 있는데요. 이번 달은 우리나라의 고건축인 서원과 사찰을 중심으로 우리 문화유산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유교와 불교가 한국을 움직이기까지
서원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성리학적 고급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조선 중기에 주로 설립되었던 조선시대 교육기관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립 대학과 유사한 기능을 했던 곳이지요. 서원이란 명칭은 당나라 때, 궁중에 설치되어 서적을 편찬하고 보관하던 집현전 서원에서 유래되었는데. 우리나라에 서원이란 이름은 세종 때도 있었지만, 선현을 모시고 성리학을 가르치는 본격적인 서원은 1543년에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 서원이 최초였습니다. 서원은 당대의 대 유학자나, 그를 흠모하는 후학이 설립해서 운영을 했습니다. 이들은 학행이 뛰어난 인물을 서원에 모셔 모범으로 삼고, 서원에서 성리학을 연구하고 가르침으로써 학파를 이루고 계승하였습니다.
<한국의 서원은 16세기 이후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사진은 정읍 무성서원> (사진 :뉴시스)
사찰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지키고, 널리 펴기 위한 곳입니다. 다른 말로 가람, 사원, 정사, , 승원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 사찰은, 인도에서 스님들이 일정 기간 동안 머무르기 위한 거처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찰은 고구려에서 불교가 공인되고 3년 후인 375년에 세워진 이불난사와 성문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후에 백제와 신라가 차례로 불교를 수용하면서부터 한반도 각지에 많은 사찰이 조성되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불교는 삼국시대를 거쳐서 고려시대까지 계속 왕실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하게 됩니다. 불교가 전래된 시기인 삼국시대 이래 한반도는 외침 혹은 내부적으로 전쟁이 많았고, 불교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안전을 비는 기복신앙과, 나라를 지키자는 호국불교적인 모습을 하게 되었는데요. 그것을 시작으로 개인의 수행이나 수양을 중시하던 인도의 불교와, 도교, 유교 사상이 뒤섞인 중국의 불교와는 차이를 드러내게 되지요.
하지만 고려왕조가 쇠퇴하면서, 송나라 주자의 성리학을 공부한 이들이 고려 말기 신진 사대부라는 정치세력으로 떠오르고 조선이라는 새 왕조의 주역으로 떠오릅니다. 유교의 통치이념을 나라의 근본으로 한 조선에서 불교는 숭유억불(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제한다) 정책에 의해서 이제 절은 대부분 산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 신진 사대부에 속하는 중에 길재, 정몽주 같이 고려 왕조를 따른 이들은, 자신의 고향에서 후학을 길러내는데 열중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서원을 만드는 주역이 되지요.
<한국 불교는 시대에 따라 흥망성쇠를 겪었다. 사진은 불국사.> (사진 : 한국관광공사)
그리고 이들은 조선 중기 퇴계 이황, 율곡 이이라는 대학자들을 배출하며, 이 때부터 이기론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논쟁과 저술이 이루어졌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 성리학의 발전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성리학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중국이 명나라 이후로 성리학이 쇠퇴하고 양명학, 고증학의 실용적이고, 보이는 현상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면. 조선은 성리학을 집중적으로 연구해서 철학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중국에서 들여온 이들 사상은 우리나라의 고유의 문화와 영향을 주고 받았고, 후세 학자들의 연구로 학문의 꽃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유교와 불교는 현대 이전까지 한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전통문화의 중심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서원과 사찰은 한국문화의 두 가지 원류인 불교와 유교문화를 가장 함축적으로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우리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원과 사찰을 보면 한국의 것이 보인다.
한국의 서원과 사찰은 각각 유학과 불교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두 가지 모두 중국에서 들여온 외래 사상임에도, 그 형태에서 중국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의 사찰은 다른 나라의 사찰과 비교했을 때 입지적으로 산중불교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대부분의 절들이 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라 후기 이후 선종의 개인적인 수행방법이 소개되면서 절과 암자가 산 중에 자리 잡기 시작했는데요. 결정적으로 조선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대부분의 절들이 산으로 들어가게 되었지요. 또한 다른 나라의 절과 다르게, 절 한편에 토속신을 모신 산신각, 칠성각, 독성각이 위치하고 있는데요. 이 삼신은 인간의 복을 관장한다는 우리나라의 토속신인데, 이것들을 불교적으로 수용하여 모셔놓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것들을 모셔놓고 자신과 가족의 복을 빌었습니다. 이것은 불교의 회통(서로 다른 사상들을 정리해서 융합)사상을 따른 것으로, 외국에서 유입된 불교사상이 토착신앙과 융합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입니다.
불교의 경우 중국에서 전래 되던 때부터,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신앙의 형태로 받아들였기에 그대로 종교화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중국이 인도에서 불교를 받아들였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리고 왕실에서 불교신앙의 세계관이 통치하는데 유리했기 때문에 먼저 종교의 공인 후, 사찰이 세워지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지요. 당시에 세워진 황룡사, 정림사 등의 사찰은 왕실의 지원을 받아, 도시 한 가운데에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부처의 가르침을 지상에 현실화 시키겠다는 불국토 사상을 따른 것입니다. 민간에서는 앞서 보았던 삼신각같은 토착신앙과 영향을 주고받아,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었습니다.
<중국에서 유입된 불교와 우리 문화의 융합 과정을 보여준 삼신각. 사진은 창원 성주사 소재>
(사진: 한국관광공사)
반면 유학이 유교가 되지 못한 것은, 중국에서 한국에 성리학이 들어올 때 이것이 종교가 아닌 학문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입니다. 공자라는 개인의 신격화보다, 맹자를 비롯한 유가사상가들에 의해서, 학문, 철학사상적인 형태로 발전한 유학이 고려시대 안향 선생에 의해 한반도에 들어오게 된 것이지요. 유교의 이념을 수도 한양 건설에 완벽하게 드러내는데요. 궁궐의 문의 이름 하나에도, 구조물 하나에도 태극과 음양오행이 담긴 이름들을 배치한 것은, 성리학적인 사상을 현실화 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한국의 서원은 중국의 서원제도를 도입한 형태로 출발했지만, 기능, 성격에서 차이가 있는데요. 중국의 서원이 관인양성을 위한 준비기구였다면, 한국은 학문을 배우고, 인격수양을 하는 장소로서 교육적인 성격이 달랐습니다. 또한 제향 의식도 중국은 제향의 대상으로 선현을 비롯하여 공자와 그의 제자도 모셨지만 조선시대의 서원은 선현만 모셨지요. 건축학적으로도 한국의 서원에는 누각이 있어서, 그곳에서 강론이나 토론을 했던 반면에, 중국은 누각 대신 교육과 관련된 시설들이 두드러집니다. 이것은 학문을 가르치는 쪽에 무게를 둔 중국의 서원과 학문을 토론하는 쪽에 무게를 둔 한국 서원의 문화적 차이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의 서원과 사찰은 그 본류를 중국에 두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문화는 처음부터 온전히 자기 나라에서만 자생할 수 없고, 서로 영향을 주고 받고 교류하면서 서로 발전하는 그런 것입니다. 고립된 문화는 그리 오래 가지 못하지요. 고대 한국의 문화는 중국과 일본은 물론이고, 다른 먼 나라의 문화를 활발히 받아들여 발전했고.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유의 문화와, 한국인들의 정서와 아이디어가 서원과 사찰의 건물 곳곳에 심어져 있지요. 우리의 건축물은 역사와 사상, 문화가 결합된 것으로서, 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의 서원에서 찾아볼 수 있는 누각. 사진은 옥산서원의 무변루> (사진 :오토타임스)
한국문화의 세계화. 우리에게 달려있다.
올해 1월 조계종 주최로 열린 1회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대토론회의 발표 주제 중 하나가 '한국불교의 현재적 성찰과 나아갈 방향' 였는데요. 이 주제를 발표한 원담 스님은 한국 불교의 나아갈 방향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한국 사회에서의 역할, 또한 인류 문명의 보편적 종교로써의 역할, 그리고한국 불교의 수행정신과 전통을 이 땅과 지구촌을 향해 제시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올해 1월 조계종 주최로 열린 1회 한국불교중흥을 위한 대토론회의 발표 주제 중 하나가 '한국불교의 현재적 성찰과 나아갈 방향' 였는데요. 이 주제를 발표한 원담 스님은 한국 불교의 나아갈 방향으로 우리의 정체성과 의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그 바탕 위에서 한국 사회에서의 역할, 또한 인류 문명의 보편적 종교로써의 역할, 그리고한국 불교의 수행정신과 전통을 이 땅과 지구촌을 향해 제시하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과학이 만능화되면서 사람들은 이제 종교에서 말하는 기적 같은 현상들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그것의 실체를 밝혀내는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가치와 맞지 않는 것으로, 특히 산업화가 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의 전통 가족과 마을, 사회는 물론이고 의식이나 가치들도 모두 급격한 변화의 시기를 맞게 되었는데요. 사람들의 삶은 풍족해졌지만 물질주의, 개인주의와 경쟁이 팽배해진 사회와 삶의 각박함에서, 돈으로는 대체되지 않는 것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부족함을 다른 사람의 말에서 찾기 시작하면서, 최근에는 옛 조상들의 일을 다시 해석한 책들이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삶에서 물질에 연연하지 않는 청빈함과 자연과 어우러지는 여유로움, 도덕적인 삶의 이야기들에서, 자신의 삶을 한 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는 것이지요.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체험하는 프로그램이 최근에 인기를 얻고 있다.> (사진 : 중앙일보)
최근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내 가족에서 우리 마을, 우리지역과, 사람들과의 교류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의 대체로서 유교에서 이야기하는 화()와 원효대사가 주장한 화쟁(和諍)의 공동체적 가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현대 개인주의의 대안으로서 공동체정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일부는 과거에서 배우는 일을, ‘각박한 현실로부터의 일시적으로 피하는 방식’의 도피처로 삼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을 보고, 그 안에 담겨있는 현대적인 가치들은 무시한 채, 자신의 목적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구절로 쓰기 위해 책의 문자에만 집착합니다.전통문화 역시 많은 부분에서 외형적 차원에서만 계승하는 한계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냥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보존에만 신경 쓸 뿐, 현대적인 가치의 발견에 대해서는 미진했던 것이죠. 옛 것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콘텐츠의 부족함은, 그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가치와 정신들이 결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원과 사찰은 그 안에 품고 있는 가치가 어마어마합니다. 건물 뿐만이 아니라 서원에서 소장하는 옛 서적들과 부속건물, 그리고 그 안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까지 오랜 세월 쌓아온 지식의 총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템플 스테이와 서원 스테이 과정은, 우리의 전통 문화를 배우고, 직접 보고 느껴보는 체험을 통해서, 우리 전통 문화를 바로 알고, 관심을 갖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관심에서 시작된 우리 문화 알기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외국과 문화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것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서구화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 더욱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최근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내 가족에서 우리 마을, 우리지역과, 사람들과의 교류에 관심이 많아진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개인주의의 대체로서 유교에서 이야기하는 화()와 원효대사가 주장한 화쟁(和諍)의 공동체적 가치는 오늘날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현대 개인주의의 대안으로서 공동체정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일부는 과거에서 배우는 일을, ‘각박한 현실로부터의 일시적으로 피하는 방식’의 도피처로 삼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필요한 부분만을 보고, 그 안에 담겨있는 현대적인 가치들은 무시한 채, 자신의 목적을 합리화 시키기 위한 구절로 쓰기 위해 책의 문자에만 집착합니다.전통문화 역시 많은 부분에서 외형적 차원에서만 계승하는 한계에 그치고 있습니다. 그냥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보존에만 신경 쓸 뿐, 현대적인 가치의 발견에 대해서는 미진했던 것이죠. 옛 것에 대한 사람들의 수요는 존재하지만, 그것을 뒷받침 해 줄 수 있는 콘텐츠의 부족함은, 그 수요를 제대로 충족시킬 수가 없었습니다.
이런 가치와 정신들이 결집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서원과 사찰은 그 안에 품고 있는 가치가 어마어마합니다. 건물 뿐만이 아니라 서원에서 소장하는 옛 서적들과 부속건물, 그리고 그 안에 소장되어 있는 문화재까지 오랜 세월 쌓아온 지식의 총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몇 년 전부터 시작된 템플 스테이와 서원 스테이 과정은, 우리의 전통 문화를 배우고, 직접 보고 느껴보는 체험을 통해서, 우리 전통 문화를 바로 알고, 관심을 갖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관심에서 시작된 우리 문화 알기는, 우리의 전통문화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 외국과 문화를 주고받으면서 우리나라만의 고유한 것으로 발전되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과 서구화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 고유의 것에 대한 정체성을 찾고, 더욱 우리 문화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게 될 것입니다.
<한국의 문화유산은 세계인을 매료시킬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사진 : 경남도민일보)
우리의 것을 제대로 안다면, 해외에 소개 할 때도 자신 있게 소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올해 국가브랜드위원회의 대통령 보고 이후로, 서원의 유네스코 등재 활동이 기대를 받고 있는데요. 또한 아리랑 TV에서 7 10, 17일 저녁 9시에 이러한 서원의 여러 가지 면을 자세하게 다룰 특별다큐멘터리 서원을 방영할 예정에 있습니다. 여기에 해당 서원이 소재된 각 자치단체들도 지원하고 있는데요. 이런 활동들은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면서, 전 세계 사람들이 지켜가야 할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한국 서원의 문화유산 등재는 단순하게 우리의 문화유산 하나가 세계 기구에 등록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유산들이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와 다른 우리만의 특징을 가지면서, 세계인이 함께 지켜야 할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지요. 그리고 이것들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들의 관심이 아닐까 합니다. 옛날의 건물들이 오늘날 살아있는 교육장으로서 생명을 주고, 현재와 미래를 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바로 현재를 사는 우리가 아닐까 합니다.(제공 국가브랜드위원회)
한국 서원의 문화유산 등재는 단순하게 우리의 문화유산 하나가 세계 기구에 등록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유산들이 세계적으로 다른 나라와 다른 우리만의 특징을 가지면서, 세계인이 함께 지켜야 할 문화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일이지요. 그리고 이것들의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우리들의 관심이 아닐까 합니다. 옛날의 건물들이 오늘날 살아있는 교육장으로서 생명을 주고, 현재와 미래를 위한 가치를 부여하는 것도 바로 현재를 사는 우리가 아닐까 합니다.(제공 국가브랜드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