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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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9대서원 - 소수서원


 
작성일 : 12-11-19 17:05
소수서원 현판 자료 조사보고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3,127  


소수서원 현판 자료 조사보고
 
자료정리 : 박 석 홍
(소수박물관 관장)
 
사적 제55호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나라에서 처음으로 세워진 서원이며, 사액서원의 효시(嚆矢)가 되는 서원이기도 하다. 경북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 152-8번지에 소재하며, 서원을 세운 분은 당시 풍기군수로 재임 중이던 신재(愼齋) 주세붕(周世鵬)이다. 창건 배경은 우리나라에 주자학(朱子學)을 처음 도입한 분이기도 한 이 고장 출신의 명현(名賢)인 회헌(晦軒) 안향(安珦) 선생을 기리고자 함이었다.
또한 여말 국운쇠퇴기에 새로운 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을 도입, 인재양성과 국운융성을 꾀했던 선생의 나라사랑 민족사랑 교훈을 되새겨 보고자 함에서였다. 지금의 장소에 서원을 창건한 것은 회헌 안향 선생이 어린 시절 숙수사(宿水寺)라는 절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이었다. 1542(중종37) 사묘(제향시설)를 세워 백운동(白雲洞)서원을 부르게 된 것은 중국 주자의 백록동(白鹿洞) 서원을 본 뜬 것이다. 그 해 문성공 묘우(文成公 廟宇)를 세워 안향선생을 주향(主享)하고, 이어 안축(安軸), 안보(安輔) 두 형제분을 배향(配享)하였다. 1550(명종 5)에는 퇴계 이황 선생의 건의 끝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이름의 사액을 받게 되면서 서원으로서의 그 기능과 체제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 서원은 인조 때에는 주신재를 추배(追配)하여 네 분을 모시면서 매년 춘추로 음력 39월 초정일(初丁日)에 지금까지 제향을 드리고 있다.
또한 유생들을 모집하여 인재양성을 시작한 것은 1543, 서원(강학시설)을 세우면서 그 해 첫 입원유생(박승건 외 2)을 필두로 하여 353년간 약 4천여 명의 인재를 배출한 바 있다. 이 가운데는 퇴계 선생의 문하생 대부분을 비롯 경향각지에서 찾아온 유생들이 운집하여 명성을 높이기도 했다.
경내에는 숙수사의 옛 흔적으로 당간지주(幢竿支柱, 보물 55)가 남아있고, 학문을 정진하면서 머리를 식히던 소혼대(消魂臺)자리, 자연친화적으로 오픈된 정자에서 학문을 강론하던 경렴정(景濂亭), 취한대(翠寒臺), 서원의 주 건물인 강학시설(강학당과 교수들의 집무실, 도서관, 교수와 학생들의 거재공간)과 제향장소(문성공 묘우 전사청 등)가 동학서묘(東學西廟)의 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조선 말엽에 이르러 전국에서 서원이 남설되면서부터 대부분의 서원은 훼철이란 아픔을 당하게 되나, 나라로부터 이미 사액을 받은 27개 서원과 20개의 사액사당은 존치시켜 유맥과 향화(香火)가 끊어지지 않게 한 바 있다. 1965년도 국가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문화재 보수사업으로 한 때 정비가 되었으며, 그동안 유림들이 관리운영해오다 영주시로 관리전환 되었다. 1996년도에 충효교육관 관리사무소라는 독립 관서로 발전, 경내에 유교박물관, 선비촌 재현, 한국선비문화수련원 등 부대시설을 확충하는 등 사라지는 전통문화와 도의 문화진작에 일익을 담당해 왔다.
 
 
1. 소수서원의 현판 자료
 
1) 조사 현판목록()
건물명
(게첨)
당호류
(편액)
기판
(중수, 상량, 규 등)
시판
(오언, 칠언절귀)
주련
비고
경렴정
(정자A)
현판 : 2
(경렴정
)
 
시판 : 16
주세붕 이황 황준량 김응조 오건 최옹 황응규 황시 강침 주세붕, 이황, 홍우정, 안현 외 2, 황섬, 정한, 유세명 등 16
 
현판 2
시판 16
소계 18
지락재
(정자B)
현판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