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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9대서원 - 필암서원


 
작성일 : 12-09-14 16:31
고암 양자징 관련기사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779  




紀年便攷v16

梁子澂 濟州人 瀟灑䖏士 彦鎮子 中宗癸未生 金麟厚婿因為師事 字仲明 號鼓巗 五嵗居母丧哀 毀成疾燒羽族和薬 亦不食韦行 學問為師所畏 宣祖朝 因薦屡為齋郞 除三縣 與鄭澈趙憲李珥成渾為道義交 監司鄭宗榮首薦子澂 朴淳除官曰得人 辛卯獄二子死 遂棄官還鄕 甲午卒年七十二 子千頃千會并師事成渾兄弟俱死於辛卯獄 千頃 弟千運 字士亨 號瀛州 成渾門人 宣祖壬辰代父舉義兵率家丁徃従高敬命 仁祖朝 太學薦其明經高行 除童蒙教官 官止司贍主薄 丙子與李浡等 倡義


양자징(梁子澂)은 본관이 제주이다. 소쇄(瀟灑)처사 안진(顔鎭)의 아들이다. 중종 계미생(서기 1523년)이며 김인후 선생의 사위가 되어 가르침을 받았다. 자는 중명(仲明)이며 호는 고암(鼓巗)이다. 5세에 어머니 상(喪)을 당하여 슬퍼함이 심해 마음을 다쳐 질병을 얻었다. 새의 깃틀들을 태워 약을 처방했으나 먹지 않고 도망쳤다. 학문을 스스로 깨쳐 스승도 놀라게 했다. 선조임금 때에 재랑(齋郞)으로 여러 차례 천거되었고 세 고을 현감을 역임하였으며 송강 정철과 중봉 조헌, 우계(牛溪) 성혼(成渾)과 서로 도의(道義)로써 교우(交友)하였다. 감사(監司) 정종영(鄭宗榮 )이 가장 먼저 자징을 추천하였는데 관직을 제수받을 때에 박순이 이르기를 “사람을 얻었다”고 했다. 신묘옥사에 연루되어 두 아들이 죽자 이로 인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갑오(1594년)에 죽으니 향년 72세였다. 아들 천경과 천회 모두 성혼에게서 학문을 배웠으나 두 형제가 모두 신묘옥사에 죽었다. 천경의 형제 천운은 자가 사형(士亨)이고 호는 영주(瀛州)인데 성혼의 門人이다. 선조 임진년에 부모를 대신하여 고경명 장군의 의병대열에 합류하였다. 인조임금 때에 경전에 밝고 행실이 고상하여 태학의 童蒙을 강하는 교관으로 추천되었으며 벼슬이 사섬주부에 이르렀다. 병자년에 이발 등과 의병 창의하였다.




 
양자징이 지은시

河西先生全集附錄卷之二




書行狀後梁子澂 033_290c



河西生應世。維岳降英靈。道義千年重。文章一代傾。因心敦孝友。戀主盡忠誠。實錄吾何敢。抽毫只費精。




顔賦沈潛質。曾加篤實行。春風吹坐暖。霽月照心明。安樂窩醒醉。寒泉舍送迎。悠悠千載上。契合一存誠。




謾賦歸來任病身。經綸事業肯求伸。鳴詩豈是攻詩客。寓酒非眞嗜酒人。共說好賢如好色。從知憂道不憂貧。樂夫天命聊乘化。萬古空留五柳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