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벽-이숙(李潚, 1550~1615)
명종 5년 함안에서 출생하였으며 자는 여등(汝燈), 호는 갈촌(葛村)이다. 선조 9년 알성무과에 합격하였으며, 동왕 24년에 제포만호에 임명되어 경상감사 김수(金晬)의 막하에서 왜병의 격퇴에 공을 세웠다. 이숙은 충성스러운 무신으로 임란 때는 곽재우 장군과 함께 적을 격퇴하였고, 정유재란 때는 정기룡장군과 함께 적을 토벌하여 선무공신에 녹훈되었다. 재란 후 영산현감, 합천군수에 임명되었으나 북인들을 등용함에 불복하여 물러나와 은거하며 정구, 장현광과 친교한 충성스럽고 어진 선비였다.
2)이휴복(李休復, 1568~1624)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인천(仁川). 자는 사장(士長), 호는 양졸정(養拙亭). 좌참찬 문화(文和)의 8세손이며, 아버지는 판서 인(寅)이다. 박제인(朴齊仁)의 문인이다.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1606년(선조 39) 무과에 급제하여 절충장군(折衝將軍)·순천부사(順天府使)를 역임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관군 별장(別將)으로 안현(鞍峴)에서 공을 세워 진무공신(振武功臣) 3등에 녹훈되었다.
호산군(壺山君)에 봉하여지고 그가 죽은 뒤 정사공신(靖社功臣)을 책훈(策勳)하여 관작을 추증한다는 뜻으로 예조에서 제문을 지어 치제(致祭)하였다. 호조판서에 추증되고, 함안 도천사(道川祠)·도계서원(道溪書院)에 제향되었다.
3)박진영(朴震英, 1569~1641)
조선 중기의 무신. 본관은 밀양(密陽). 자는 실재(實哉), 호는 광서(匡西). 아버지는 판서 오(旿)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군수 유숭인(柳崇仁)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적을 쳤다. 1599년 임진왜란 때의 공으로 용궁현감(龍宮縣監)이 된 뒤 10여년간 천거하는 자가 없어 제부(諸府)의 판관에 머무르다가 1613년(광해군 5) 경흥도호부사가 되어 변방을 방어하는 데 공을 세워 절충장군으로 승진, 1619년 순천군수를 지내면서 우영장을 겸하였다.
1624년(인조 2) 이괄(李适)의 난이 일어나자, 해서도방어사로 도원수 장만(張晩)의 휘하에서 별장으로 종군하였다. 이괄이 이 소식을 듣고 원수부의 여러 장수 중에 오직 남이흥(南以興)·박진영·유효걸(柳孝傑) 뿐이라고 하여 그를 높이 평가하였다. 그는 신경원(辛景瑗)과 힘을 합하여 동교(東郊)에서 이괄의 군대를 크게 격파하여 공을 세웠으나 공신에 녹훈되지는 못하였다. 뒤에 평산도호부사(平山都護府使)가 되어 해서방어사를 겸임하다가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호는 무숙(武肅)이다.
4)조익도(趙益道, 1585~1624)
자는 여행이며, 선조 18년(1585)에 태어났다. 무과에 급제하였고 이괄의 막하에 있었으나 갑자년 이괄이 반란을 일으키므로 이에 맞서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이에 조정에서 원종훈(原從勳)을 내렸으며, 영조 때는 악무목정충록(岳武穆精忠錄)을 하사하고 병조참의로 증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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