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주벽-조방(趙垹, 1557~1638)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함안(咸安). 함안 출생. 자는 극정(克精), 호는 두암(斗巖)·반구정(伴鷗亭). 생육신 조려(趙旅)의 현손으로, 아버지는 증형조참판 정언(庭彦)이며, 어머니는 성산이씨(星山李氏)로 만호(萬戶) 희조(希祖)의 딸이다.
이칭(李偁)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박제인(朴齊仁)·이길(李佶)과 종유하면서 학문을 강마하였다. 이황(李滉)의 <성학십도 聖學十圖>를 깊이 연구하여 학문을 성취하였으며, 조목(趙穆)·유운룡(柳雲龍)·정경세(鄭經世)·박성(朴惺) 등과 교유를 맺고 도학에 힘썼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곽재우(郭再祐)를 따라 창의하여 정암진(鼎巖津)과 기강(岐江) 등을 지키는 등 전공을 많이 세웠다. 또한, 정유재란 때에는 화왕산성 의진(義陣)에서 군무를 도와 많은 적을 무찔러 고을사림들이 그의 충의에 감복, 조정에 상소하여 포창을 청하였다.
그 뒤 난이 평정되자 낙동강 우포(藕浦)의 말바위〔斗巖〕위에 반구정을 짓고서 마주 바라보이는 곽재우의 창암정(滄巖亭)을 수시로 내왕하면서 산수의 자연을 자신의 은둔생활에 흡수시켜 회포를 풀었다.
1607년(선조 40) 초봄에 정구(鄭逑)·장현광(張顯光) 등 도내의 선비 35인과 함께 용화산 아래 낙동강에서 뱃놀이를 즐겼던 일을 기록한 <용화산하동범록 龍華山下同泛錄>이 전하고 있다. 충효사상을 일생의 신조로 삼았으며, <가훈팔잠 家訓八箴>과 <충효실감 忠孝實鑑> 등의 저술을 남겼다. 호조참판에 추증되었으며, 저서로는 ≪두암집≫ 3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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