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정배걸(鄭倍傑)
정배걸은 초계 정씨의 시조이며 고려전기 지공거 곽원(知貢擧 郭元)의 문하에서 장원급제한 인물이다. 이후 중앙의 주요 관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그가 연 사숙(私塾)은 홍문공도(弘文公徒) 혹은 웅천도(熊川徒)라 불리었는데 고려시대 사학십이도(私學十二徒) 중 하나이다. 그가 죽은 뒤 문종은 1080년에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조서를 내리고, 홍문광학추성찬화공신개부의동삼사수태위문하시중 상주국광유후(弘文廣學推誠贊化功臣開府儀同三司守太尉門下侍中 上柱國光儒侯)로 추증하였다.
2)정문(鄭文, ?~1106)
고려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초계(草溪). 자는 의덕(懿德). 예부상서·중추원사(中樞院使) 배걸(倍傑)의 아들이다. 유복자로 태어나 문과에 급제한 뒤 문종 때 비서랑(秘書郞)이 되었고, 선종이 즉위하면서 직한림(直翰林) 겸 사문조교(四門助敎)에 발탁되었다.
이어 우습유(右拾遺)가 되자, 대간에서 그의 외조가 처인부곡(處仁部曲) 출신이므로 간관이 됨은 마땅하지 않다고 하므로 전중내급사 지제고(殿中內給使知制誥)로 고쳐 제수되었다가 지개성부사(知開城府事)를 거쳐 형부원외랑(刑部員外郎)이 되었다.
1105년(숙종 10)에 형부상서 정당문학 겸 태자빈객(刑部尙書政堂文學兼太子賓客)이 되고 검교사공 예부상서(檢校司空禮部尙書)가 더해졌다. 청렴·공정하여 형조를 10여년 맡았으나 일을 잘 처리하였고, 송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받은 금백(金帛)을 그의 종자에게 나누어주고 그 나머지로는 모두 서적을 사가지고 왔다 한다.
일찍이 서경에 호종하여 기자(箕子)의 사당을 세우도록 청하기도 하였다. 죽은 뒤 특진 좌복야 참지정사(特進左僕射參知政事)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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