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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정대임(鄭大任, 1553~1594)
조선 중기의 의병장. 본관은 영일(迎日). 자는 중경(重卿), 호는 창대(昌臺). 영천 출신. 아버지는 용(容)이며, 어머니는 증참판 김응생(金應生)의 딸이다. 증조부 윤식(允湜)에게 수학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당지산(唐旨山)에서 복병으로 적을 크게 무찌르고 이어 7월에 영천전투에 참가, 의병 100여명을 이끌고 의병대장 권응수(權應銖)의 휘하에 들어가 중총(中摠)의 직책을 맡고 활약하였다.
그 뒤 영천에서 신령으로 이동하는 적군을 권응수와 함께 요격, 박연(朴淵)에서 대승하고 영천수복에 공을 세웠다. 용궁·비안의 전투에서도 다수의 적을 참획(斬獲)하고 병사 박진(朴晉)과 함께 경주탈환전에 용명을 떨쳤다.
이듬해 태화강(太和江)의 적군을 공격, 종일 역전하여 많은 전과를 올린 공으로 1593년 비안현감·훈련원첨정·예천현감·경상좌도병마우후를 역임하였다. 1594년 무과에 급제, 승품(陞品)되기도 전에 적군과 싸우다가 죽었다.
그 뒤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2등에 녹훈되고, 가선대부(嘉善大夫)·호조참판 겸 동지의금부사에 추증되었다. 창대서원(昌臺書院)에 제향되었으며, 공산회맹 (公山會盟) 때 창화한 시 한수가 전한다.
2)정제(鄭梯, 1689~1765)
자는 가승(可升), 호는 남창(南窓), 본관은 영일(迎日), 아버지는 사제(思齊)이다. 정만양(鄭萬陽), 정규양(鄭葵陽) 두 선생에게 취학(就學)하였으며 정중기(鄭重器)와 정간(鄭幹)은 정제와(鄭梯) 동문(同門)으로 강마(講磨)를 거듭하여 학문이 크게 진보하였다. 여러번 향해(鄕解)에 합격했으나 과거(科擧)에 실패한 후 위기지학(爲己之學)에 힘쓰고, 훈수(塤叟)와 지수(篪叟)를 추모하여 강단(講壇)을 수축(修築)하고 정자를 중건(重建)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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