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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경온(曺景溫, 1548~1592)
자는 여율(汝慄), 호는 임계(林溪), 본관은 창녕(昌寧), 아버지는 희장(希章)이다. 조경온(曺景溫)은 임신왜란 때 적들이 남의 분묘를 발굴하는 변(變)이 있으므로 가권(家眷)을 산중으로 피난을 보내고 자기는 재사(齋舍)에서 묘를 수호하였다. 하루는 왜적이 와서 창(槍). 검(劒)으로서 위협하나 조경온이 의관을 정재하고 조금도 굴복치 않거늘 적이 감동하여 그냥 가고 말았다. 그 후 왜병이 또 와서 위협하다가 칼로 목을 찔려 유혈이 낭자하니 제적(諸敵)들이 경동(驚動)하여 묘직(墓直)을 찾아 잘 보호하라고 부탁하기도 하였다. “내가 나라를 위해서 전지(戰地)에 나가지 못한 것이 한스러우나 선묘 앞에서 죽는 것도 영광이다” 하면서 그 익일(翌日)에 절명(絶命)하였다. 선조때에 효(孝)로써 공조참의(工曹參議)의 증직(贈職)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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