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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이견간(李堅幹, ?~1330)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자는 직경(直卿), 호는 국헌(菊軒), 세칭(世稱) 산화선생(山花先生), 시호는 문안(文安). 옹(雍)의 아들로 충렬(忠烈),충선(忠宣),충숙왕(忠肅王)의 3대에 걸쳐 통헌대부(通憲大夫), 민부전서(民部典書), 진현관대제학(進賢館大提學),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홍문관사(弘文館事)를 역임하였다. 1317년(충숙왕 4)에 사신으로 원나라에 가다가 상주(尙州) 객관(客館)에서 두견새 우는 소리를 듣고 읊은 시는 매우 훌륭하여 서거정(徐居正)은 그의 저서인 [동문선(東文選)]에 산화(山花)의 싯구를 뽑아 동방에서 두견(杜鵑)을 읊은 시 사절(四絶) 중 가장 뛰어나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한다.
또 원나라에 갔을 때에 태학사(太學士) 주방(周昉)에게 춘추대의(春秋大義)를 강하니, 주방(周昉)이 일어나 재배(再拜)하고는 천하의 선비라 하고 삼한(三韓)의 문화가 이 정도인줄 몰랐다고 할 정도의 대학자였으며, 운곡(耘谷) 원천석(元天錫)도 말하길 “고려 중엽에 유자(儒者)의 도(道)에 따른 사람은 좨주 우탁(禹倬)의 주역(周易)과 문안(文安) 이견간(李堅幹)의 춘추(春秋)는 한진(漢晉)의 전문가(專門家)라도 이 두분을 따라 올 사람이 없다”고 하였다. 문장(文章)이 천하에 천명(擅明)되어 세상 사람이 산화선생(山花先生)이라 했다 하며, 성주(星州)의 문곡서원(汶谷書院), 밀양(密陽)의 용안서원(龍安書院)에서 향사(享祀)하였다.
2)이대(李玳)
본관은 벽진(碧珍)이며, 호는 묵재(默齋), 고려 충선왕(忠宣王) 때에 문과삼인(文科三人)에 등제하여 1337년(충숙왕 6)에 충청도(忠淸道) 존문사(存問使)가 되었으며, 1342년(충혜왕 3)에 밀직상의(密直商議)로서 삼도순무사(三道巡撫使)가 되었다. 1343년(충혜왕 4)에 봉익대부(奉翊大夫)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동의회부감사(同議會部監事) 수문전 대제학(修文殿大提學)에 이르렀다.
3)이군상(李君常)
이대(李玳)의 손자이며, 고려시대 형조참판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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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인 현덕사(顯德祠)와 강당인 강의당(講義堂)이 전학후묘의 형식에 따라 배치되어 있다.
사우인 현덕사와 경제문, 강당인 강의당, 동재인 근독제(勤篤齋), 서재인 존성제(存省齋)와 신도비, 외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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