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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호문(權好文, 1532~1587)
조선 중기의 문인·학자.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장중(章仲), 호는 송암(松巖). 안주교수(安州敎授) 규의 아들이다. 1549년(명종 4) 아버지를 여의고 1561년 30세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1564년에 어머니상을 당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청성산(靑城山) 아래에 무민재(無悶齋)를 짓고 그곳에 은거하였다.
이황(李滉)을 스승으로 모셨으며, 같은 문하생인 유성룡(柳成龍)·김성일(金誠一) 등과 교분이 두터웠고 이들로부터 학행을 높이 평가받았으며, 만년에 덕망이 높아져 찾아오는 문인들이 많았다.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내시교관(內侍敎官) 등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56세로 일생을 마쳤으며, 묘지는 안동부 서쪽 마감산(麻甘山)에 있다.
안동의 송암서원(松巖書院)에 제향되었다. 그는 평생을 자연에 묻혀 살았는데, 이황은 그를 소쇄산림지풍(瀟灑山林之風)이 있다고 하였고, 벗 유성룡도 강호고사(江湖高士)라 하였다. 저서로는 ≪송암집≫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경기체가의 변형형식인 <독락팔곡 獨樂八曲>과 연시조인 <한거십팔곡 閑居十八曲>이 ≪송암집≫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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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존하는 경내의 건물로는 청풍사(淸風祠)·중정당(重正堂)·동재·서재·정도문(正道門)·전사청·내삼문·주소(廚所) 등이 있다. 청풍사는 향사(享祀)를 지내는 3칸 규모의 사우(祠宇)로 권호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중정당은 원내의 모든 행사와 유림 회합 및 학문 토론 장소인8칸 규모의 강당으로 중앙은 마루로 되어 있고, 좌우측은 협실(夾室)로 되어 있다.
동재와 서재는 수학하는 유생들이 거처하는 각 3칸 규모의 건물이며, 주소는 고지기가 거처하는 6칸 규모의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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