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봉서원은 무의공 박의장과 목사공 박홍장 형제를 제향(祭享)하고 두분의 인물(人物)을 본받고 충열(忠烈)을 이어받아 나라의 간성이 배출되기를 소망하여 서원을 창건 하였다.
서원의 시초는 1665년에 구봉정사(九峯精舍)를 건립하고 그 후 1785년(정조 9)에 구봉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구봉정사는 영해(寧海) 유림이 농은 백동현(聾隱 白東賢)을 중심으로 공의(公議)를 모아 구봉정사를 창건하고 경내에 정충사(精忠祠)를 지어 도사 박종문 (都使 朴宗文)과 증호조판서 박의장과 목사 박홍장을 제향 하였다. (도사 박종문은 야성박씨이며 박의장 형제의 외선조 이다. 뒤에 忠烈祠로 이봉하였다.)
구봉정사 상량문(上량樑文)은 항제 이숭일(恒齋 李嵩逸)이 짓고 봉안문(奉安文)은 학사 김응조(鶴沙 金應祖)가 지었다.
구봉서원의 승격(昇格)은 1784년(정조 8)에 박의장에게 무의시호(武毅諡號)가 내려 영해 사림과 도 유림에서 서원으로 승격이 공론화되고 영해부사 홍언철(洪彦喆)의 적극적 지원으로 1785년(정조 9)에 서원으로 개제(改題)하고 개제위판시 고유문(改題位版時 告由文)을 이주원(李周遠)이 지었다.
그리고 구봉예성후 고사(九峯禮成後 告辭)를 하였다.
서원건물은 묘우(廟宇)인 정충사(精忠祠)를 비롯하여 강당 돈전당(惇典堂)과 동,서재인 정의재(正義齋), 일성재(一誠齋)와 누각인 망일루(望日樓) 그리고 하인청(下人廳)과 부속건물이 있었다. 망일루 상량문은 정언 남경희(正言 南景羲)가 지었고 하인청에는 설립기(設立記)를 현수(懸垂)하였다.
관에서의 지원은 1771년에 조정으로부터 원생(院生)을 배정받았고 1785년부터 영해부에서 각종 의식과 규범정비, 서원재산의 세금면제와 제물(祭物) 등을 지원받고 원생의 신역(身役)을 면제 받았다. 한때 관에서의 지원이 여의치 못하자 1773년 구봉서원 유생등장(儒生等狀)을 영해부에 올렸다.
1886년(고종 5)에 서원 회철(毁撤)령에 의하여 훼철되었다.
현재 서원의 유적지에는 건물의 주춧돌, 매판표시(埋版標示), 부속건물 1동이 보존되어 있다.
이에 영해유림에서는 무의공 15대 주손인 박연대를 중심으로 서원복설위원회를 설립하여 서원의 재건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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