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남서원은 강당을 중간에 두고 사당은 뒤에 두었으며 앞으로는 2층루가 있었다. 사당은 영의공사(英毅公祠)라 하고 강당은 동재(東齋) 또는 체인재(體仁齋)라 이르고, 서재(西齋)는 경의재(敬義齋)라 하고 문루는 낙영루(樂永樓)라 하였는데, 모두 합하여 여남서원(汝南書院)이라는 현판(懸板)을 게시(揭示)하였다.
그 후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의 건물들은 대부분 철거되고 여남서원유허비(汝南書院遺墟碑)는 1909년에 세워졌고 강당건물은 1920년에 중건(重建)되었다. 현재는 강당만이 남아있다.
1)강당
강당은 앞면 4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현재 강당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2)비각과 비석
건물의 후원에 “여남(汝南)”이라는 웅대한 글씨가 붙은 비각안의 비석에“唐按廉使贈諡英毅南公敏遺墟”, “後孫嘉義大夫中樞院贊議原任奎章閣直學士奎熙敬書”라는 남규희(南奎熙)의 친필 비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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