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권행(權幸, 생몰년 미상)
고려 전기의 공신으로 안동권씨의 시조이다. ≪고려사≫ 태조세가에는 ‘행(行)’이라 하였다. 본성은 김(金)이라고 한다.
930년(태조 13) 후백제의 견훤(甄萱)이 고창군(古昌郡 :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을 포위하여 전세가 고려에게 매우 불리하였다. 이 때 유금필(庾黔弼)의 주장으로 공격을 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 승리는 당시 고창지방 호족으로 추측되는 이들이 협조를 잘 하였기 때문이었다. 이 전공으로 태조는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하고, 대상(大相)이라는 관계를 내려주었다. ≪증보문헌비고≫에는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부(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로 봉해진 기록도 보인다.
2)권산해(權山海, 1403~1456)
조선 전기의 의인(義人).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보(德甫), 호는 죽림(竹林). 1440년(세종 22)에 천거되어 녹사·주부가 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1454년(단종 2)에 처음으로 종부시첨정(宗簿寺僉正)이 되었다.
1455년에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울분을 못이겨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세조가 조정에 나올 것을 종용하였으나 병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사건에 가담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한탄하다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관직을 박탈당하였으며 자손들도 백년동안 벼슬길이 막혔다. 그러나 1789년(정조 13)에 관직이 추복되고, 뒤에 이조참판에 추증, 경주의 운곡서원(雲谷書院)에 제향되었다.
3)권덕린(權德麟, 1529~157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군서(君瑞), 호는 구봉(龜峰). 효충(孝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명추(命錘)이고, 아버지는 첨정 계중(繼中)이다. 이언적(李彦迪)의 문인이다.
1553년(명종 8)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성균관전적을 거쳐 병조·예조의 좌랑을 역임하였다. 양재역 벽서사건(良才驛壁書事件)에 연루되어 강계로 유배된 이언적이 1553년 그곳에서 죽었는데, 그는 스승의 영구(靈柩)를 중로에서 맞이하여 돌아왔다.
그리고 누구도 감히 이언적의 전사(奠祀 : 제물을 올려 제사를 지냄)를 주장하지 못하였는데도 죽음을 무릅쓰고 홀로 창의(倡議)하여 옥산서원(玉山書院)을 세워 제향하였다. 그 관직이 합천군수에 이르렀다. 경주의 운천서원(雲泉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구봉유집≫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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