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이세기(李世基)
호(號)는 송암(松巖), 諡號(시호)는 文僖(문희). 1279년(충렬왕 5) 成均試(성균시)에 장원하고, 1280년(충렬왕 6) 親試(친시)에서 둘째형인 東庵(동암)과 함께 장원하니, 忠烈王(충렬왕)은 크게 칭찬하여 黃牌(황패)를 하사하였으며 政丞(정승)이었던 閔漬(민지)선생과 贊成事(찬성사) 趙簡(조간)선생은 詩文(시문)을 보내어 慶賀(경하)하였다. 벼슬은 秘書省 秘書校書(비서성비서교서)를 거쳐서 檢校政丞(검교정승) 등을 역임하였다.
2)이천(李蒨, ?~1349)
고려 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1299년(충렬왕 25)에 국자감시(國子監試)에 급제하였다.
1321년(충숙왕 8)에 우사보(右思補)로서 폐인(嬖人) 이인길(李仁吉)의 첩의 아버지인 서경낭장(西京郎將) 최득화(崔得和)의 수주수령(隨州守令) 임명을 위한 고신(告身)에 서명하지 않아 곤장을 맞고 섬에 유배되었다.
1344년(충혜왕 복위 5)에 지공거(知貢擧) 박충좌(朴忠佐)와 함께 동지공거로서 진사를 뽑고 하을지(河乙沚) 등 33인에게 급제를 주었다. 같은 해(충목왕 즉위년)에 첨의평리 상의(僉議評理商議)로 원나라에 가서 교사(郊赦 : 하늘에 제사지내고 은사를 베푸는 일)를 축하하고 돌아왔다.
또한 왕이 서연(書筵)을 설치하여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로서 시독(侍讀)하도록 하였다. 월성군(月城君)에 봉해졌다.
3)이종윤(李從允, 1431~1494)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가정(可貞), 호는 송와(松窩). 을충(乙忠)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원길(元吉)이고, 아버지는 현감 형(衡)이며, 어머니는 안동권씨(安東權氏)로 직장 명리(明利)의 딸이다.
1462년(세조 8) 생원·진사 양시에 합격하였고, 1468년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영창전참봉(永昌殿參奉)을 거쳐 예빈시경력(禮賓寺經歷)이 되었다. 1470년(성종 1) 직언으로 인하여 장기에 귀양갔다가, 2년 뒤인 1472년에 풀려나 내자시주부(內資寺主簿), 예조좌랑·정랑이 되었다.
1482년 헌납에 제수되고, 이어서 장령·제용감첨정(濟用監僉正)·봉상시부정(奉常寺副正)·사옹원부정(司饔院副正)·시강원보덕을 거쳐 1489년에 다시 사헌부장령·집의에 올랐다. 1490년 제주목사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죽었다.
그는 직언과 충간을 사명으로 생각하여 조정간신의 처벌, 궁중불사(宮中佛事)의 저지에 힘썼으며, 환관들의 농간을 막고, 내수사의 높은 이자를 받아 치부하는 행위 등을 탄핵하였다. 모현사(慕賢祠)에 봉안되었다. 저서로 ≪송와문집≫ 4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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