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흥도(嚴興道)는 영월(寧越)의 호장(戶長)으로 당시 영월에 안치된 노산군(魯山君)(단종)이 시해되자 시신을 수습하여 장사를 지냈다. 이러한 엄흥도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해 1750년(영조 26)에 별묘(別廟)를 건립하고, 1756년(영조 32)에는 상절사(尙節祠)를 건립하였는데, 이 사(祠)는 1833년(순조 33)서원으로 승격하여 의산서원(義山書院)이라 하였다. 이 서원은 대원군때 훼철되었고 이후 1900년에 의산서원(義山書院)자리에 상의재(尙義齋)가 복설되고 위패를 별묘에 봉안하고 충절사(忠節祠)라 하였다. 상의재(尙義齋)는 이전의 의산서원(義山書院)부속건물 중 강당(講堂)에 해당된다.
1926년에는 단소(壇所)를 설치하였다. 1990년 충절사로 복원하였으며, 매년 음력 3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1750년(영조 26)에 그의 충성심을 기리기 위하여 별묘(別廟)를, 1756년(영조 32)에는 상의재(尙義齋)를 건립하였다. 1833년 의산서원(義山書院)으로 승격되었으나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에 의해 안타깝게도 훼철되고 말았다. 1900년 후손들에 의해 의산서원 자리에 상절사가 복설(復設)되고, 마을 중앙 위패를 별묘에 봉안하여 충절사라 하였으며, 의산서원 강당으로 사용되었던 상의재는 재사로 사용되고 있다. 상의재는 의산초등학교(최근 폐교됨) 뒷편에 남동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충절사는 상의재 건너편에 마을 뒷산인 소재 우측편 남서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상의재는 강당건물에 주로 채택되는 퇴칸(退間, 양쪽끝칸)을 둔 전형적인 중당협실형(中堂挾室形) 평면이며 방과 마루와는 사분합들문을 달았다. 건축양식은 무익공 소로수장이며 5량 구조에 제형판대공을 세워 팔작지붕을 만들었다. 뒤쪽에 방형 흙담을 둘린 단소가 일곽을 이루고 있다. 현 단소(단소)자리는 과거 사당이 있었으나 훼철된 후 사당을 중건하지 못하고 설단(設壇)만 하였으며 강당 전면 좌우에 동·서재가 있었다 한다. 좌측담에 기대어 자리하고 있는 주사(廚舍)는 П자형 건물로 남부지방의 민가형태이다.
충절사는 전퇴칸을 두고 3칸을 통칸으로 하여 위패가 배설되는 평범한 재사건물로 어칸을 퇴칸보다 조금 넓게 잡았다. 그리고 앞쪽은 익공양식으로 주상에 2익공살미를 얹고 주칸에 화반을 끼웠으나 배면은 그냥 굴도리로 처리하여 정면만 강조한 듯하다. 입구는 내삼문 형태로 되어 있으며 주변에 담장이 둘러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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