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산리사는 상운에서 봉화읍 가는 도중 황전마을 가기 전에 있다. 워낭소리 촬영지인 하눌리 입구를 지나 고개를 넘어 군부대 들어가는 입구의 사거리를 지나서 내리막길을 조금 내려 가다가 오른쪽 도로변에서 약 100m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산골짜기 모퉁이에 있다. 승용차 출입이 가능하며, 임시로 지은 듯한 가건물 형태의 관리사가 있다. 건물의 본래 위치는 알 수가 없지만, 봉
산리사 들어가는 문 뒤에 남덕사(藍德祀)라는 떨어진 현판이 놓여있고, 진도문도 본 건물과 따로 떨어져 한편에 있다. 정면 대청마루에 에 봉산리사/봉산서당이라는 현판이 있고 좌우에 제관실로 사용되던 방들이 있는 것을 보아 후학들을 가르치는 서당으로도 사용된 듯하다. 봉산리사는 조선 중기 문신인 황파 김종걸(1628∼1708)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들이 세운 건물이다. 선생은 학문과 덕행에서 뿐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병들자 소태산에 올라가 7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다. 그 후 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인도하여 명약을 구해 부모님의 병을 낳게 했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그는 죽은 뒤에 이조 참판으로 추대되었다.
정조17년(1793)에 세운 이 사당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 폐쇄되었다가 1925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관실(祭官室)이 딸린 문간채와 一자형의 본채가 어우러 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앞쪽에는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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