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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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분강서원(汾江書院)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612
   이현보(李賢輔)
   1613년(광해군 5)
   
   9월 9일
   
이 서원은 1613년(광해군 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현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향현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후 1700년(숙종 26)에 서원으로 개편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고종 5)년에 훼철 되었으며, 1967년 옛터 서쪽에 복원하고 영정을 봉안하고 석채례를 행했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게 되어 운곡에 도곡재사 옛터에 서원과 종가를 이건하였다가 2006년 농암유적지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1)이현보(李賢輔, 1467~1555)
조선 중기의 문신·시조작가. 본관은 영천(永川). 자는 비중(棐仲), 호는 농암(聾巖)·설빈옹(雪鬢翁). 예안 출신. 참찬 흠(欽)의 아들이다. 1498년(연산군 4)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32세에 벼슬길에 올라 예문관검열·춘추관기사관·예문관봉교 등을 거쳐, 1504년 38세 때 사간원정언이 되었으나 서연관의 비행을 논하였다가 안동에 유배되었다.
그 뒤 중종반정으로 지평에 복직되어 밀양부사·안동부사·충주목사를 지냈고, 1523년(중종 18)에는 성주목사로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받았으며, 병조참지·동부승지·부제학 등을 거쳐 대구부윤·경주부윤·경상도관찰사·형조참판·호조참판을 지냈다.
1542년 76세 때 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나 병을 핑계로 벼슬을 그만두고 고향에 돌아와 만년을 강호에 묻혀 시를 지으며 한거하였다. 홍귀달(洪貴達)의 문인이며, 후배인 이황(李滉)·황준량(黃俊良) 등과 친하였다. 조선시대에 자연을 노래한 대표적인 문인으로 국문학사상 강호시조의 작가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서로는 ≪농암집≫이 있으며, 작품으로는 전하여오던 <어부가 漁父歌>를 장가 9장, 단가 5장으로 고쳐 지은 것과 <효빈가 孝嚬歌>·<농암가 聾巖歌>·<생일가 生日歌> 등의 시조작품 8수가 전하고 있다. 1612년(광해군 4) 향현사(鄕賢祠)에 제향되었다가 1700년(숙종 26) 예안의 분강서원(汾江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효절(孝節)이다.

분강서원은 숭덕사(崇德祠)와 강당 흥교당(興敎堂)과 성정재(誠正齋), 동재 극복재(克復齋), 서재 경서재(敬恕齋), 그리고 관리사로 되어있다. 지금 분강서원은 매년 한 번 향사(享祀)를 치며, 평소에는 학생이나 학술단체 등에 개방되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분강서원’ 편액은 성세정(成世珽), 상량문 조덕린(趙德隣), 기문 장신, 봉안문은 김화가 썼고, 서원창건의 전 과정이 적힌 「창원일기(創院日記)」와 「복원일기(復元日記)」를 비롯하여,「영정개모일기(影幀改摹日記)」,「전장기(傳掌記)」,「부조기(扶助記)」,「임사록(任司錄)」,「분강영당영건소계첩(汾江影堂營建所帖)」,「진설도(陳設圖)」,「홀기(笏記)」 등의 적지 않은 자료가 남아있어 서원건축과 운영 실태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숭덕사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참고-안동관광정보센터 http://www.tourandong.com/
농암종택 http://www.tourandong.com/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