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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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노봉서원(魯峯書院)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내신2리 340
   권산해(權山海) 권종락(權宗洛)
   1794년(정조 19)
   
   음력 3월 상정(上丁)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140호(1985.08.05지정)
이 서원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다 순절(殉節)한 죽림 권산해(竹林 權山海) 선생의 절의를 본받고 후진을 양성키 위해 세운 건물이다. 1794년(정조 18)에 창건된 이 서원은 1866년(고종 3)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는데 도산(陶山), 임천(臨川)서원의 건의와 도내(道內) 유림들의 지원으로 1921년에 복설되었다. 1990년부터 음려 3월 상정(上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1999년 권종락(權宗洛)을 추배하였다.

1)권산해(權山海, ?~1456)
조선 전기의 의인(義人).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덕보(德甫), 호는 죽림(竹林). 1440년(세종 22)에 천거되어 녹사·주부가 되었으나 모두 나가지 않았다. 1454년(단종 2)에 처음으로 종부시첨정(宗簿寺僉正)이 되었다.
1455년에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인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울분을 못이겨 조정에 나가지 않았다. 세조가 조정에 나올 것을 종용하였으나 병을 치료한다는 핑계로 나가지 않았다. 이듬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가 참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사건에 가담하지 못한 것을 스스로 한탄하다 끝내 자살하고 말았다.
관직을 박탈당하였으며 자손들도 백년동안 벼슬길이 막혔다. 그러나 1789년(정조 13)에 관직이 추복되고, 뒤에 이조참판에 추증, 경주의 운곡서원(雲谷書院)에 제향되었다.
 
2)권종락(權宗洛, 1745~1819)
자는 명응(明應), 호는 갈산(葛山),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아버지는 익수(翼銖)이다. 이헌경(李獻慶)의 문하에서 경의(經義)를 강구(講究)하여 채번암(蔡樊巖), 홍이계(洪耳溪), 박청재(朴淸齋)와도 교분이 두터웠다. 1812년(순조 12) 홍경래난에 사림의 추대로 의병장이 되었으나 난이 평정됨을 듣고 진(陳)을 파하였다. 1816년 호환(虎患)이 심할 때 그가 형산(兄山)에 기도(祈禱)하여 호환(虎患)이 지식(止息)되는 등 이적(異蹟)이 많았다. 또 선조(先祖) 죽임공(竹林公) 산청(山淸)이 단종의 복위사건에 육신(六臣)과 함께 참여했으나 아직껏 신면되지 못함을 원통히 생각하여 수차에 걸쳐 상소하여 마챔내 복관 증작(贈爵)되어 금성단(錦城壇)과 영월(寧越)의 창절사(彰節祠)에 배향(配享)케 하였다.

내신마을의 신당초등학교 옆 노사봉 아래 서향으로 좌정하고 있는 5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다. 제향공간과 강학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사주문을 통하여 강당을 들어가게 되어 있고, 강당 뒷편에 전사청이 있다. 그 우측에 내삼문과 사당(崇義祠)이 위치한다. 강당 좌측 협문 밖에는 관리사가 있고 담장 바깥 울창한 송림 앞에는 연못이 있다.
 
1)강당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3량가 팔작집으로, 서쪽으로부터 온돌방 2칸, 대청 2칸, 온돌방 1칸으로 이루어져 있고, 뒷쪽과 우측에는 툇마루가 있으나 좌측에는 없다. 대청 2칸의 전면에는 사분합문을 설치하여 밀폐된 실내공간을 이룬다. 건물은 높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노봉서원’현판 이외에 몽양재(夢養齋), 건척재(乾惕齋)라 양각된 현판이 걸려있어 동서재의 역할도 겸하는 것으로 보인다.
 
2)사당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으로, 자연석 기단과 초석 위에 전면에만 두리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기둥 사이에는 두짝 살문을 내었고 앞쪽으로 퇴간을 두었다. 내삼문인 신도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소슬대문으로 되어 있다.
 
3)기타
그 외 강당 뒤편에 전사청이 있고 강당좌측 협문 밖에는 관리사가 있으며 경내에 비석 2기가 세워져있다.


참고-한국국학진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