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1. 홈
  2. 로그인
  3. 회원가입

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군방서원(群芳書院)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문방리 271
   신경행(辛景行)
   1688년(숙종 14)
   
   음력 정월 7일, 6월 8일
   신경행영정-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55호(1986.04.28지정)
1688년(숙종 14)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신경행(辛景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사우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60년(영조 36)에 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807년(순조 7)에 사림과 후손들의 협의로 신경행의 8대조인 고려 태학사 장(藏)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그 뒤 지방유림과 자손들이 협력하여 복원하였다. 해마다 음력 정월 7일과 6월 8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재산으로는 전답 2,000여평, 임야 6정보, 대지 1,200여평 등이 있다.

1)주벽-신경행(辛景行, 1547∼?)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영산(靈山). 자는 백도(伯道), 호는 조은(釣隱). 자전(自全)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세주(世胄)이고, 아버지는 습독(習讀) 질(垤)이다. 1573년(선조 6)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577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92년에 한산군수가 되었고, 1596년에 충청도순찰사의 종사관이 되었다. 이 때 관내 홍주에서 이몽학(李夢鶴)의 난이 일어나자 난의 진압에 공을 세웠다. 다음해에 군자감정(軍資監正)이 되었고, 1604년에 청난공신(淸難功臣) 삼등에 책록되고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에 충청도병사가 되었으나 시정이 바르지 못하다는 암행어사의 지적을 받았다. 뒤에 예조판서에 증직되었다. 시호는 충익(忠翼)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祠宇), 신문(神門)과 양쪽 협문(夾門), 5칸의 재실(齋室), 홍전문(紅箭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신장과 신경행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은 관리인이 거주하는 한편, 제향 때 제관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1)신경행영정-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155호(1986.04.28지정)
이 영정은 이모본(移摸本)으로써, 원본은 청난공신(淸難功臣)에 책록된 것을 기념하여 왕명에 의해 입각도형(立閣圖形)된 공신상으로 추정된다. 신경행은 1596년 이몽학(李夢鶴)의 난을 토벌하는데 홍주목사(洪州牧師) 홍가신(洪可臣)의 종사관(從事官)으로 출전하여 청난공신 3등에 책록되었다. 상용형식은 좌안 7분면에 공수자세를 취하고 의자에 앉은 정장관복차림의 전신 좌상이다. 이것은 이모본이기는 하지만 7분면의 형용, 양어깨의 경사진 각도가 심한 차이를 보이며, 단령(團領)자락을 들고 앉음으로 인해 생겨나는 세모꼴의 형태, 단령의 트임새에 내비치는 단령내부의 옷감과 족좌대 밑에 깔린 채전 등은 조선중기 공신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나 신경행 재세시 모제(帽制)의 경우 사모의 높이가 낮은데 반하여 이 초상화에는 사모가 높게 표현되어 있어 이모의 시기는 대략 조선 후기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