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원연합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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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곡리더십아카데미 - 옛 성현의 얼과 지혜가 살아 숨쉬는 곳!


우록서원(友鹿書院)
   충청북도 청원군 현도면 우록리
   하 연(河 演)
   1708년(숙종 34)
   
   음력 2월 8월 중정(中丁)
   
문효영당(文孝影堂)은 1708년(숙종 34)에 문효공(文孝公) 영의정(領議政) 경재 하연(敬齋 河演)과 정경부인(貞敬夫人) 성산이씨(星山李氏) 집안의 사당으로 일명 “타진당(妥眞堂)”이라 한다.
1825년(순종 25)부터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中丁日)에 향사하고 있다. 이곳에 봉안된 영정은 1467년(세종 13)에 연당(蓮堂) 하우명(河友明)이 그린 하연의 초상화와 성신이씨의 초상화를 1641년(인조 19)에 이모(移模)한 것을 경상도 합천의 타진당(妥眞堂)에서 1749년(영조 25)에 개모(改模)한 것이다.

1)주벽-하연(河演, 1376∼1453)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신희(新稀). 즙(楫)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대사헌 윤원(允源)이고, 아버지는 부윤 자종(自宗)이며, 어머니는 정우(鄭寓)의 딸이다. 정몽주(鄭夢周)의 문인이다.
1396년(태조 5)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봉상시녹사를 거쳐, 직예문춘추관수찬관(直藝文春秋館修撰官)이 되고, 이어 집의·동부대언 등을 역임하였다. 이 때 태종은 그가 간관(諫官)으로서 의연한 자세로 일을 말하는 것을 보고 손을 잡고 치하했다 한다.
세종이 즉위하자 지신사(知申事)가 되어 조심스럽게 처사하여 신임을 받아 예조참판·대사헌을 역임하였다. 1423년(세종 5)에는 대사헌으로서 조계종(曹溪宗) 등 불교 7종파를 선(禪)·교(敎) 양종(兩宗), 36본산으로 통합하고, 혁파된 사원의 토지와 노비는 국가로 환수하고자 하여 채택 받았다.
1425년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고 예조참판을 거쳐,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가 한때 천안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유배에서 풀려 형조·병조의 참판을 거쳐 1431년에 대제학이 되고, 그 뒤 대사헌·형조판서·좌참찬 등 고위관직을 역임하였다.
1437년 의정부에 들어가서는 판이조사로서 이조의 일을 맡아 공세법(貢稅法 : 연분9등, 전분6등)을 마련했으며, 1442년에는 각품의 행수법(行守法)을 제정하였다. 1445년에 좌찬성이 되어 70세로서 궤장(几杖)을 받았다. 이어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1449년에 영의정이 되었다.
영의정으로 있던 1451년(문종 1)에 문종이 대자암(大慈庵)을 중수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하고 치사(致仕)하였다. 의정부에 들어간 지 20여 년 간 문안에 사알(私謁)을 들이지 않았고 법을 잘 지켜 승평수문(昇平守文)의 재상으로 일컬어졌다.
1454년에 문종의 묘정에 배향되고, 숙종 때 진주의 종천서원(宗川書院), 합천의 신천서원(新川書院)에 제향되었다. 편서로 ≪경상도지리지 慶尙道地理志≫·≪진양연고 晉陽聯藁≫가 있다. 시호는 문효(文孝)이다.

지금의 영당은 1943년에 중건하고 1978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2간, 측면 1간반 겹처마 맞배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2개의 쌍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1989년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1)하연 영정
하연의영정은관복을 입은 전신교의좌상(全身交椅坐像)으로 가로 79cm, 세로 134cm의 설채견본(設彩絹本)이며, 성산 이씨의 영정은 대례복(大禮服) 차림을 한 전신교의좌상으로 가로 79cm, 세로 146cm의 설채견본이다.
참고-청원군 사이버 문화재대관 http://culture.puru.net
청원군지, 2006.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