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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항재(有恒齋) 김양(金亮 : 1569~) 학행(學行)의 유항재(有恒齋) 김양(金亮)은 내자시(內資寺) 직장(直長)을 역임하였으며 부모께는 효성이 지극하였고, 자식에게는 정의(正義)를 가르치고 심경(心經)과 근사록(近思錄) 등을 강마(講磨)하기를 변함없이 하여 문학(文學)과 후덕(厚德)이 널리 알려졌다. 또한 청련(靑蓮) 이후백(李後白) 고죽(孤竹) 최경창(崔慶昌)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 석천(石川) 임억령(林億齡)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과 도의(道義)로 사귀니 사람들이 그분이 사는 곳을 군자리(君子里) 행의동(行義洞)이라 부르다. 2) 절효(節孝) 김호광(金好光 : 1600~1624) 충절(忠節)의 절효(節孝) 김호광(金好光)은 1622년 무과에 급제하고, 1624년 이괄(李适)의 난(亂) 때 아우 신광(伸光)과 장정(壯丁)을 모아 금남(錦南) 정충신(鄭忠信)과 함께 저탄(猪灘)싸움에 공을 세우고 그 곳에서 24세로 순절(殉節)하니 1625년 진무원종일등공신(振武原從一等功臣)에 오르다. 3) 행정(杏亭) 김신광(金伸光 : 1608~1666) 충효(忠孝)의 행정(杏亭) 김신광(金伸光)은 1928년 무과에 급제한 뒤 박천군수, 영천부사, 희천 충주목사를 역임하고 이괄(李适)의 난(亂), 병자호란(丙子胡亂), 그리고 1646년 심기원(沈器遠)의 역모(逆謀)를 방지한 공으로 영국원종일등공신(寧國原從一等功臣)에 오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