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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암행어사를 지낸 정치가요 문장가인 조팽년(趙彭年)과 정조 때 성균관 교수를 지냈던 조규운(趙奎運)을 제향(祭享)하기 위해 세웠다. 원래 이 서원은 1624년(인조 2) 도내 유림들이 주봉산 아래에 있는 기좌리 좌척마을에 세웠었으나 1868년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71년 이곳으로 옮겨 다시 지은 것으로 서원 건물로서는 다소 초라한 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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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팽년(趙彭年, 1549∼? )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기수(期叟). 아버지는 세걸(世傑)이다. 강진에서 살았다. 1573년(선조 6) 생원이 되고, 157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88년 전의현감으로 재임하다가 조망(躁妄)하다는 사간원의 탄핵으로 파직되었다. 1599년 여산군수로 재임하던 중에 정사를 아전에게 맡겨 요역이 고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쇄마(刷馬)로 개인의 짐을 운반하였다는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병조판서에 추증되었다. 2)조규운(趙奎運, 1725∼1800) 자(字)는 문보(文甫), 호(號)는 덕림(德林). 효자. 학문에 열중하였고 백의입시(白衣入侍)하여 태학교수로 후학양성에 힘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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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내의 건물은 3동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강당, 사당, 내삼문이 있다. 강당은 최근에 지어진 듯한 건물로 ‘주봉서원’이라고 써진 현판이 걸려있으며, 강당 앞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강당 왼편에는 내삼문이 있고 내삼문 뒤로 이 서원의 사당인 주봉사(胄峰祠)가 자리잡고 있다. 주봉사 주위로는 시멘트 담장이 쳐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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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리에 위치한 주봉서원에는 계원마을 조경철씨가 집안 선조 14대의 종손인 계음 조팽년이 형관(刑官)으로 재직 시 선조에게 올린 시를 세긴 비를 세워 두었다. 또 글을 배운 한석봉 선생에게 지어 올린 시, 선조에게 하사받은 나침반과 마패를 가지고 이순신 장군, 유성용 선생과 함께 3일 동안 전장의 느낌을 적은 시비가 세워졌다. 시비는 각각 높이 99㎝, 넓이 40㎝의 3개의 비석에 새긴 시는 고문서에 수록된 글체 그대로 본을 떠 한 달의 제작 기간을 거쳐 비에 옮겨졌다. 시비에는 1586년 조팽년이 임진왜란 군대상황을 조사하여 선조임금에게 보고할 때 선조가 조팽년의 남루한 옷을 보고 하사한 옷감을 사양하며 옷감을 병사들에게 보내달라고 요청한 글귀도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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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남도답사1번지 강진문화관광 http://gangjin.go.kr/ 정보화마을 전남강진옴천마을 http://omcheon.invil.org 사진-다음카페 ‘한국참풍수지리학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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